제노사이드 멈춰! 이스라엘 제소…‘만델라 정신’ 남아공팔레스타인의 평화적 생존 위한 국제법과 시민사회의 역할2023년 12월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를 파멸시키고 있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해 ‘제노사이드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에 의거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에 ‘가보전(잠정) 조치’가 내려졌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와 영향이 있을까? 국제법 연구자인 일본 세이난가쿠인대학(西南学院大学) 네기시 요타(根岸陽太) 법학 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만델라 정신 언급하며 세계법정에 이스라엘 제소한 남아공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고향을 잃는 나쿠바(파국, 대재앙)를 경험했고, 그 후에도 1967년부터 반세기 넘게 이스라엘에 의한 점령을 당해왔다. 특히 가자 사람들은 2007년부터 ‘천장 없는 감옥’ 혹은 강제수용소에 비유되는 육해공 봉쇄 하에 가둬져 있다.
나쿠바(대재앙)로부터 75년째가 되는 2023년 10월 7일, 가자 지구에서 실권을 쥔 하마스 무장집단이 이스라엘에 대해 월경 공격을 준비한 것이 계기가 되어 양측 사이 처참한 무력분쟁이 시작되었다. 무력분쟁 시작으로부터 반년이 지난 시점에 가자 지구에서는 3만3천 명 이상의 사망자, 7만5천 명 이상의 부상자가 나왔다. 사상자의 수가 피해를 다 설명해주지는 못한다. 생활 기반이 파괴되어 기아와 질병이 만연한 ‘살아있는 지옥’이 펼쳐지고 있다. 인류는 제노사이드(인종/민족 집단 자체를 말살시킬 의도로 행해지는 살해)를 목격하고 있다.
이러한 인도적 위기 속에 2023년 12월 2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제노사이드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에 근거해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에 법적 조치를 청구하는 행동에 나섰다. 국제사법재판소는 유엔의 주요 기관 중 하나로, 네덜란드 헤이그에 소재한 평화궁에 거점을 둔 ‘세계법정’이다. 국가 간 분쟁(법적 견해나 이해의 충돌)에 관한 쟁송(爭訟) 사건에 ‘판결’을 내릴 뿐 아니라, 유엔기관의 자문을 받아 특정 법률 문제에 대해 ‘권고 의견’을 내기도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의한 제소는 여러 이유에서 큰 전환을 가져왔다.
첫째, 그때까지는 10월 7일 ‘이후’ 발생한 무력분쟁에 관한 법적 논의(자위권과 국제인도법)가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 소송이 제기됨으로써, 그날 ‘이전’부터 계속된 점령-봉쇄에 의해 서서히 진행되어온 제노사이드로 문제가 재구성되었다.
세 번째로 ‘제노사이드 방지 및 처벌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모든 국가가 (직접적인 당사자국이 아니라 하더라도) 타국에 대한 의무를 존중하고 준수하여 공동의 이익을 가지는 의무(당사국 간 대세적 의무)를 근거로 삼았다. 이에 따라 피해당사자인 가자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체약국을 대표하는 원고로 인정되고, 나아가 이에 공감한 제3국의 소송 참여도 불러오고 있다.
국제법과 국제사법재판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가자 지구 사람들의 권리를 한시라도 빨리 보호하기 위해 ‘가보전 조치’(provisional measures, 잠정 조치라고도 함) 요청을 추가한 것도 상황과 잘 들어맞는다. 가보전 조치는 어떤 권리에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초래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절박한 ‘긴급성’이 있는 경우에 내려진다. 확정적인 사실 인정과 법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본안(판결)은 증명도 어렵고, 시간이 필요하다. 가보전 조치는 ‘장래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에 권리보전을 위한 응급조치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 소송에서 국제사법재판소는 가자에서 막대한 수의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고, 피난 생활을 강요당하고, 주택과 의료 등의 인프라가 파괴된 객관적인 상황에 더해, “인간의 얼굴을 한 동물과 싸우고 있다”고 말한 이스라엘 정부 고위 관료의 차별 발언도 중요하게 보았다.
결론적으로, 제노사이드 방지 조약 하에 ‘회복 불가능’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긴급성’을 갖고 보호해야 할 ‘장래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 이스라엘에 내려진 가보전 조치에는 찬반 양론이 있다. 가장 많은 지적을 받는 부분은 가자 사람들이 갈망하던 ‘군사 작전의 즉각 중단’을 지시하지 않은 점이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측에 자국군이 제노사이드적 행위를 수행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도 지시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군사 작전의 중대한 수정을 촉구하는 명령으로도 볼 수 있다. 한편, 가자 사람들에게 ‘긴급하게 필요한 기본적 수요와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조치가 지시된 부분은 국제사법재판소가 고민해 짜낸 지혜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5월 24일에 국제사법재판소가 이스라엘에 ‘가자 지구 최남단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얼핏 보면,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령이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스라엘에 계속해 무기 수출을 하는 국가들의 외교와 국내 재판, 나아가 시민사회에 의한 ‘보이콧-투자 철수-제재(BDS)’ 운동에서도 재판소의 명령이 여실히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보편적인 국제법에 비춰 내려지는 권위를 가진 결정은 국제사회가 그것을 받아들여 활용할 때 본령을 발휘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생존을 위해 연대해야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인권을 준수하도록 목적하는 ‘보이콧-투자 철수-제재(BDS)’ 운동은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선례를 따른 것으로, 보이콧은 원재료가 이스라엘산이라고 표기된 식음료품, 이스라엘군과 경찰에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지가 판단의 근거이다. 아마존과 구글은 클라우드기술을 제공했고, 여행사이트인 에어비앤비, 트립어드바이저는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점령지의 관광을 홍보하며, 맥도날드는 이스라엘군에 식사제공을 해서 보이콧의 대상이 되었다. 이스라엘산 와인과 레몬 등 감귤류도 대상이 된다.
2차대전 전범국인 일본의 경우, 헌법에서 “전 세계의 국민이 동등하게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으니, 평화헌법 정신에 따른다면 가자 지구의 상황과 개인들이 무관하지 않다. 일본 방위기업 이토추에비에이션(Ito Chu Aviation Co., Ltd.)이 시민들의 항의 활동과 국제사법재판소의 명령에 의거해, 이스라엘 최대 군수기업과의 협력 각서를 파기한 사례도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만델라 정신을 상기하며 손을 내민 것처럼, 우리도 국제법에 대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며 팔레스타인의 평화적 생존권을 위해 연대할 필요가 있다. [번역: 고주영]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번역, 편집한 내용입니다.
이 기사 좋아요 5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국경너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