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는 2015년 개원하여 약 11만평의 부지에 사회적 기업과 NGO, 협동조합 등 약 220여개의 단체들이 공공성 추구, 사회 문제 해결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입주해 활동했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고 쉬어가는 도심 녹지 공원이 형성됐다. 하지만, 이제 이런 설명은 과거형이 되어가고 있다.
10년만에 재집권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2년 12월, 서울혁신파크 재개발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오 시장은 혁신파크 공간이 “지난 10년 간 폐쇄적으로 이용되며 활용도가 떨어졌다"며 “서울 서북권 발전을 견인할 신(新)경제생활문화 중심으로 재탄생시키겠다”고 밝혔다. 이후 서울혁신파크 내 많은 입주 단체는 계약기간 종료 후 재계약을 맺지 못한 채 하나 둘 떠밀리듯 자리를 비워야 했고, 혁신파크 운영도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혁신파크는 그 자리에 있다. 그리고 혁신파크 정문 입구 쪽엔 제로웨이스트(zero waste), 비건(vegan) 카페인 ‘카페 쓸’이 있다. 카페 쓸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지키고자 버티는 중이다.
그런 카페 쓸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몇 달 전부터 들려왔다. ‘사라지면 안 되는데…’ 생각만 하고 있다가, 더 시간이 지나기 전에 카페 쓸의 배민지 대표를 인터뷰해야겠다 싶었다. 이 공간의 탄생기를 독자들에게 전했던 만큼, 지금 당면한 위기와 철거 위험 상황 또한 전해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조금 더 미룰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카페 쓸 시작 전에 매거진 쓸(SSSSL)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본가가 대구인데, 대구에 살 때부터 ‘쓰레기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캔 같은 걸 쓰레기로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곤 했거든요. 버리기 아까웠던거죠. 또 외식업 전공이라 프랜차이즈 매장에서도 일했는데, 똑같은 쓰레기가 매일 버려졌어요. 일 그만두고 도서관에 갔다가 『나는 쓰레기 없이 산다』(비 존슨 저, 박미영 역, 청림Life)라는 제로웨이스트 관련 책을 읽게 됐어요. 4인 가족이 1년 동안 1리터 정도의 쓰레기만 배출하면서 사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물론 미국은 땅이 넓고 음식물 쓰레기 등을 퇴비로 만들어 정원에 묻을 수 있으니까 좀 다르긴 하겠다 싶었지만, 놀랍더라고요. 한국에선 어떤가? 찾아봤는데, 그때만 해도 제로웨이스트나 쓰레기 문제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잡지를 제가 만든 거죠.
-매거진 쓸을 만들면서 서울혁신파크와 인연이 생긴 거죠?
저렴한 임대 공간을 찾다 보니 서울혁신파크를 알게 됐고, 이 안에서도 임대료가 가장 싼 공간에서 잡지 제작을 시작했죠.(웃음) 그렇게 있다 보니 이 공간(비전화카페)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보게 됐고, 오가며 인사하다가 활동하는 분들과도 친해지게 됐어요. 가치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비전화공방 프로젝트가 더 이상 지원 받지 못하고 끝나게 되면서 이 공간이 방치 상태가 됐어요. 너무 아깝더라고요.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인데 싶어서 다시 살려보자는 이야기를 꺼냈어요. 서울혁신센터(혁신파크 운영을 수탁한 곳)와도 논의하기 시작했고요.
-카페 쓸의 문을 연 건 언제인가요?
2021년에 서울혁신센터와 계약했고, 2022년 초에 오픈했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코로나 팬데믹 기간이었잖아요. 카페 운영이 쉽지 않았어요. 쓸은 일회용 컵도 안 쓰는 곳이니까, 텀블러를 가져오라는 메시지를 전해야 했는데, 그것도 일단 사람이 와야 전할 수 있잖아요? 정말 쉽지 않았죠. 그나마 코로나 팬데믹 사태가 좀 정리되고 나니, 그제야 사람들이 카페의 존재를 알아차리더라고요. 우린 계속 운영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계약할 때 좀 의아했어요. 1년 단위로밖에 계약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 전에 ‘청년허브’ 입주 공간에도 있어봤고, 혁신파크 다른 공간에도 있었는데, 최소 2년 아니면 3년이었거든요. 근데 왜 1년일까 싶었어요. ‘우린 카페이지 않냐, 최소 2년 계약은 해줘야 한다’고 했더니 조례가 바뀌었다면서 무조건 다 1년 계약이라고 하더라고요. ‘갱신은 계속 할 수 있냐?’ 물었더니, 단체 중에 5년 있는 곳도 있고 7년 있는 곳도 있다면서 괜찮다고 했어요. ‘우리만 잘하면 계속 연장하면서 있을 수 있겠구나’ 했죠. 1년 계약인 지점에 대해 계속 이의 제기하긴 했지만…. 따를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우리가 한 계약은 임대차계약이 아니라, 서울혁신파크조례에 따라 동행 협약서라는 거였어요. 조항을 보면 서울시에서 나가라고 했을 때, 이의 제기하고 재평가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긴 한데, 일반 임대차 계약과는 확실히 좀 달랐어요. 하지만 그 땐 이런 일이 생길지 몰랐으니까… 크게 걱정하진 않았죠.
-서울혁신파크 재개발 이야기를 들은 건 언제인가요?
2022년 11월에 재계약을 했는데, 바로 12월 즈음에 계획 발표가 났어요. 혁신파크 입주자 단체방이 있는데 거기 (오세훈 시장의 발표 관련) 기사가 올라왔거든요. 그리고 간담회가 2023년 1월에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개발 이야기가 나왔을 때만 해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몰랐어요. 사실 오세훈 시장이 다시 당선되기 전부터 개발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언제 할지 모른다더라’ 정도였거든요. 그래서 크게 믿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어요.
-다른 입주 단체들 반응은 어땠어요?
다들 비슷했어요. 반신반의하는. 그러다 간담회 때 ‘이제 공간에서 나가야 하는 거면 대책이 있느냐, 다른 공간을 마련해 주느냐’ 등을 질문했는데, 서울시 측에선 ‘그런 계획 없고, 그냥 다 나가야 한다. 개발 방향으로 진행한다’고만 하더라고요. ‘당신들 의견은 수렴되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일방적인 간담회였어요. 서로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가 전혀 아니었고, 그냥 통보하는 자리였던 거죠. ‘궁금한 건 물어보라. 하지만 우리 답은 정해져 있다’는. 근데 그 때도 실감이 안 났어요.
-실감이 난 건, 언제부터였나요?
4월 즈음부터였어요. 입주 단체들이 하나 둘 계약이 종료되어 나가더라고요. ‘아, 정말 재계약이 안 되는구나’ 체감하기 시작했죠. 그래서 “서울혁신파크 개발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했어요. 한 4천명? 5천명 정도 서명에 참여했고, 사실 지금도 계속 할 수도 있는데… 문제는 서울시가 그 서명을 안 받는다는 거에요.
저희가 서명 받은 걸 전달하려고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어요. 서명 받은 걸 정리도 했는데, 서울시에서 그걸 받지 않았어요. 거부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당황했고 또 황당했죠. 시민들이 열심히 서명에 참여해 줬는데, 이 내용 자체를 받지 않는다는 게 참… 지금도 그 서명 자료를 갖고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무력감이 들기도 하고 안타까워요.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 또한 얼마나 무력감이 들까요? 시민들이 목소리를 냈는데도 결국 서울시가 마음대로 하는 걸 봐야 하는 게, 너무 슬픈 일인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러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요. 이 사태와 관련해서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무엇인가요?
일단은 이 개발과 관련해 의견을 수렴했는지 모르겠고요. 또 시장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이 공간에 있던 사람들을 다 내보낸 게 이해가 안 돼요. 자기들 입맛에 맞게 하려고 하는 부분이 너무 당황스러운 거죠. 얼마 전에 은평세무서가 혁신파크로 임시 이전했거든요. 세무서 이전이 나쁘다가 아니라, 왜 멀쩡히 있던 단체들을 다 내보냈냐는 거죠. 이렇게 계속 이 건물들을 쓸 거면, 계속 쓰게 해줬어도 되는 거잖아요?
-입주 단체들이 공동 대응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 부분이 참 아쉬운데,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이 컸어요. 그 기간 동안엔 예전처럼 입주 단체들이 함께 모여 활동하기 어려웠어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상태가 이어졌고, 예전에 있던 주민자치회 같은 것도 완전히 없어졌고요. 한 달에 한번 반상회 같은 모임이 있긴 했지만, 그걸로 충분치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흩어져 있다 보니까, 서울시에서 압박이 들어왔을 때 밀려 나가게 됐던 것 같아요.
바로 개발을 할 것 같지 않았어요. 카페 쓸 사무 공간이 혁신파크 내 청년청 건물에 있었는데 거기도 재계약을 안 해줘서 쫓겨났어요. 근데 그렇게 단체들을 내보내고 나서 아무 것도 안 하더라고요. 그런 걸 한번 보고 나니까, 좀 더 있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너무 억울해서요. 재계약을 못 해주는 상황이라면 다른 대안을 마련해줘야 하잖아요? 무조건 나가라고 하니, 이 사업을 위해 준비하고 마련한 것들이 너무 아까운 거죠. 여기서 맺은 여러 관계들도 그렇고요.
솔직히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힘든 코로나 팬데믹 때 여기 안 들어왔죠. 그렇잖아요? 그 때 사람도 없어서 영업이 너무 힘들었지만, ‘제로웨이스트 사업은 장기간으로 봐야 하는 거다, 쓰레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문화가 동네에 자리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생각하고 장기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시작한 거에요. 그런데 이제 좀 할만 하다 싶으니까 나가라니요.
거기다 지금 이 개발도 우리의 가치와 너무 맞지 않아요. 멀쩡한 공간들을 다 부수고, 새로 짓는다는 게, 낭비로밖에 보이지 않는 거에요. 혁신파크 운영이 생각만큼 잘 안 됐을 수도 있고, 새로운 시장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다 내쫓고 부수고 다시 짓는 것만이 방법인가요? 이 공간을 이용하던 시민들의 의견은 또 얼마나 반영되었나요? 이런 것들을 생각하니까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거에요.
-저 또한 서울혁신파크에 여러 추억이 있어요. 매해 비건 페스티벌이 열릴 때 놀러와서 친구들 만났던 일이나 여러 활동, 세미나 등도 했죠. 이 공간이 단지 서울 한복판에 있는 ‘금싸라기’ 땅이 아니라, 다른 의미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자본만이 어떤 가치를 대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공간이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다양한 실험과 도전이 있었거든요. 제로웨이스트 카페를 이렇게 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장애인권과 소수자 인권 등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이 공간에서 이야기됐고, 또 그런 목소리를 내는 집합체였다고 생각해요. 혁신파크 내에 있던 여러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NGO들이 무슨 일을 했나요? 정부와 지자체에서 돌보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존재들을 돌보는 일들을 했단 말이죠. 서울시의 지금 행정은 그 모든 걸 무시하는 거라고 봐요.
여기 있던 장애인치과도 얼마 전에 결국 녹번역으로 이사를 갔는데요. 이사 간 곳이 원래 혁신파크에 있던 만큼 장애인친화적이지 않아서 고생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엘리베이터에 베드(침대에 누워서 이동하는 경우)가 들어가기 어렵고, 주차도 더 어려워졌다고 하고요. 또 발달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 분들이 치과 진료를 받다가 소리 지르면서 뛰쳐나오기도 했었는데, 여긴 넓은 공원이니까 그 행동이 크게 주목받거나 위험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상가 건물이라 그런 것도 문제가 되나 보더라고요.
서울시 입장에선 입주 단체들이 다 떠나서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니에요. 오히려 더 많은 문제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해요.
-현재 서울시에서 이야기하는 은평 혁신파크 개발 관련 청사진을 보면, 대규모 복합쇼핑몰 등을 이야기하고 있더라고요. 바로 근방에 백화점이 있고, 구파발 역에도 쇼핑몰이 있고, 그리 멀지 않은 일산에 또 큰 쇼핑몰이 있는데 말이죠. 쇼핑몰이 편의시설이 잘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쇼핑몰 아니고선 좋은 편의시설을 못 만드나 싶기도 하고요.
우리 삶이 너무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활동할 수 있는 범위나 공간이 적죠. 다 인위적인 공간이고요. 그에 비해 혁신파크는 도시 안에서 그래도 자연을 많이 접할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지금도 여전히 시민들, 가족들이 혁신파크에 와서 쉬고 놀기도 하는데, 아이들이 와서 꽃 이름, 나무 이름, 새도 보고 가요. 이런 건 쇼핑몰에서 체험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이 좋은 공간을 왜 그렇게 낭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사실 변상금 압박도 들어오고, 명도소송도 들어오고 해서 무섭긴 해요. 그래도 지금까진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어요. 모금 활동도 열어주시고. 앞으로가 걱정이긴 해요. 서울시에서 제기한 명도소송 결과가 아마 곧 나올 거고, 그럼 상황이 더 어려워지겠죠? 그 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많아요.
그럼에도 계속 버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이 공간이 가진 역사와 의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서울에 이런 공간이 만들어졌고, 이런 활동이 있었다는 게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혁신파크 내에 많은 생명체들, 숨 쉬며 살아가는 많은 존재들을 조금 더 지키고 싶어요. 지금 서울혁신파크에 남아 있는 단체가 두 곳 더 있는데, 저희는 카페니까. 그래도 좀 더 노출이 되잖아요. 사람들이 오가며 ‘아, 여긴 계속 하네?’라고 알아주기도 하고요.
오늘 아침에도 어떤 연세 많은 할머님이 엄청난 짐을 끌고, 혁신파크 내 있었던 우체국을 방문하려고 오셨어요. 우체국이 없어진 걸 모르셨던 거죠.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거의 매일 보거든요. 이곳의 이 변화가 사실 준비되지 않은 변화였던 거죠. 너무 화가 나요. 서울시가 이렇게 책임 없이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요.
-지금이라도 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응하셨죠, 현 사태가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계신가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혁신파크 개발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할 때도 늦었다고 생각하긴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여론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정치인들은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으니까요. 조금 더, 끝까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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