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베트남에서 온 애도 만삭이 돼서 본국에 갔잖아요. 일 못하니까 도장(‘해고’를 의미) 찍어야지. 복잡해. 내가 말하잖아, 나 재수 없다고. 봐봐, 임신한 애들도 만나야 되지. 내 일도 바빠 죽겠는데 그렇잖아. 왜 자꾸 일을 만드냐고. 아는 분들이 우리 보고 그래. ‘야, 너네 터가 좋은가봐 니네 집에 와서는 왜그렇게 임신을 잘해?’ 만삭이 되어서 3년 계약 끝나고 갔어.”
충남 부여의 도영순(가명, 50대 여성) 씨는 상추농장 비닐하우스 총 22동을 운영하며 15년 동안 이주노동자를 고용해왔다. 그 중에는 임신한 노동자도 많았다. 주변 사람들은 “이 집 터가 좋은가”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러나 집터가 좋아서가 아니다. 이주여성노동자들 연령대가 20~30대이고, 이들의 생애주기가 임신과 출산이라는 재생산 기간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재수 없어 걸렸다”? 이주노동자는 노동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고용허가제의 10년은 생애주기상 연애, 결혼, 출산 기간과도 맞물려
고용허가제 한국어 능력시험 응시자격이 만 18세 이상 39세 이하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오는 이주노동자 연령은 20~30대이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뒤, 4년 10개월에서 최대 9년 8개월 동안 한국에 머물 수 있다. 약 10년의 기간은 생애주기상 결혼, 임신, 출산 기간과 맞물려 있다.
‘2021-2022 캄보디아 인구 및 보건조사’에 따르면, 캄보디아 평균 초혼 연령은 여성은 21.5세, 남성은 24.4세이다. 결혼 후에 한국에 오거나 한국에 와서 캄보디아 출신의 노동자와 결혼을 한다.
“어떤 노동자가 임신을 해가지고 숨기고 있다가 한 거의 임신 7개월째 되서 그 때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휴가 달라고. 그러면 사장은 어찌합니다. 그냥 계약해지 했고, 이 친구는 출산하러 본국에 갔습니다. [중략] 캄보디아 대사님을 초청해서 근로자들한테 교육을 시키는데, 청소 문제라든지 다른 기타 사항들, 거기 포함돼 있는 것 중에 임신도 있습니다. ‘임신 하지 말라’가 아니고 계획적으로 사장님한테 미리 좀 이야기를 해주면 사장님도 대처를 해야 할 거잖아요.” (송지한, 사업주)
2019년 2월 25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캄보디아 대사관, 농업외국인고용주연합회가 주최하여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경남 밀양에 초청했다. 캄보디아 대사는 강당에 모인 캄보디아 노동자들에게 강연을 했다. 사업주의 말을 잘 들으라는 취지의 교육이었고 ‘임신’ 관련 내용도 포함되었다. ‘밀양 농업 외국인근로자 고용 사업주 요청사항 건’이란 제목으로 주한 캄보디아 대사에게 보낸 ‘사업주 요청사항’ 7개 중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발신: 밀양농업 외국인 고용주 연합회 수신: 주한 캄보디아 대사 제목: 밀양 농업 외국인근로자 고용 사업주 요청사항 건 〈사업주 요청사항〉 [중략] 7. 여성근로자의 임신에 관련하여서는 개인적인 사정이므로 사업주는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여성근로자들이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합니다. 한국에서는 낙태가 금지되어 있어[2021년부터 '낙태죄'가 폐지되고 임신중지는 비범죄화되었음] 근로자들이 낙태를 시도하다 병원에서 안 된다고 하면 사업주에게 말합니다. 사업주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업주는 엄청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근로자들은 임신을 주의 있게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결혼한 근로자들은 임신 계획이 있다면 한국에 체류기간 동안은 계획 있게 임신을 할 수 있도록 부탁드리며 근로자의 건강한 임신과 출산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송출국(캄보디아)에서는 성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략] 2019년 2월 20일 밀양 농업 외국인 고용주 연합회
해고된 노동자는 임신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장업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비자연장이 되지 않아서 강제출국조치를 당한다. 혹은 사업주가 동의해주지 않아서 비자연장이 되지 않아서 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결혼, 임신으로 해고 당하지만 구제할 방법은 거의 없어 사업주는 이주노동자의 임신을 막기 위해 ‘사생활 감시, 통제’하기도
“성실근로자로 한국에 다시 오고 싶었기 때문에 열심히 열심히 일했어요. 사장님도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내가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 정말 일은 끝내주게 잘했거든요. 2023년 3월 20일쯤 제 비자가 만료되기 전이었어요. 사장님이 몰래 다른 사람을 뽑아서 5일 뒤에 새로운 노동자가 온대요. 그리고 저는 며칠 뒤에 캄보디아로 돌아가야 한대요. 그 얘기를 듣자마자 정말 너무 화가 났고 어이가 없었어요. 내가 결혼해서 사장님이 해고한 거예요.”
충남 논산의 상추농장에서 일을 했던 쏘펀(가명, 캄보디아 20대 여성) 씨는 성실근로자로 재입국을 하기 위해서 한 사업장에서 4년 10개월 일했다. 주변에 알고 지내던 캄보디아 노동자가 결혼을 한 뒤 남편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며 일자리를 옮겼다. 사업주는 이를 보고 쏘펀 씨도 결혼을 했으니 남편이 있는 사업장을 가거나 혹은 임신해서 곧 일을 그만 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입국을 허가하지 않았다. 재입국 승인은 사업주의 권한에 달려있기 때문에 쏘펀 씨는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잔타(가명, 캄보디아 40대 여성)씨는 경남 밀양의 한 깻잎 사업장에서 4년 넘게 일을 했다. 하루 12시간 넘게 비닐하우스 안에서 일을 했다. 일이 끝나면 땀에 흠뻑 젖은 채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 숙소로 돌아왔다. 잔타 씨의 숙소는 임시가건물이어서 정화조를 묻을 수가 없어서 집 안에는 화장실도 없었다. 환기가 되지 않아 공기가 눅눅했다. 바퀴벌레들이 떼지어 집안을 돌아다녔다. 다른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두 명과 함께 월세를 내고 살았지만 그 집은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 아니었다. 친구집에 가는 것도, 친구가 놀러오는 것도 다 사장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사장님이 좀 까다로운 편이에요. 왜냐하면 주변 캄보디아 친구들이 놀러오면 절대 안된다고 사장님이 그랬어요. 어디 가고 싶어도 못 나가게 해요. 여기 이 지역 사장님들이 대부분 그래요. 친구들이 놀러오는 거 금지예요. 금지. 사장님한테 결혼한 부부라고 사진도 보여줬는데 남편이 부인을 보러 오는 것을 금지했어요. 캄보디아 사람들이 애인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기도 하고, 애인하고 싸워서 헤어지기도 해요. 그럼 캄보디아 사람들이 울고불고 하니까 사장님한테는 너무 귀찮은 일이예요. 사장님들은 노동자들이 애인 사귀는 거 그렇게 원하지 않아요.”
이를 두고 한 캄보디아 이주여성노동자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이 ‘갑질’해요, ‘갑질’이 무슨 뜻인지 알아요. 내가 어디 가면 어디를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 매번 물어봐요. 한국 사람들은 원래 그래요?”
‘이주노동자도 출산전후휴가 90일 주어야 한다’ 실효성 없는 규정 사업장에 추가인력 배치 등 제도적 지원 반드시 뒤따라야
고용허가제로 온 외국인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국인과 동등하게 근로기준법, 최저임금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노동관계법의 적용받는다. 근로기준법 제74조 제1항은 ‘사용자는 임신 중의 여성에게 출산 전과 출산 후를 통하여 90일(한 번에 둘 이상 자녀를 임신한 경우에는 12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90일의 출산전후휴가를 주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5인 미만 사업장은 정당한 이유가 없어도 해고가 가능하다. 농업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장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임신의 이유로 해고될 수도 있다. 반면, 5인 이상 사업장은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사실상 할 수는 있지만 이주노동자가 이런 절차를 밟기 쉽지 않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 3항에 따르면, 사업주와 계약을 종료한 뒤 3개월 이내에 새로운 사업장을 취직하지 못하면 출국조치 당한다. 다만 임신과 출산 등의 이유로 새로운 사업장에 취직하지 못하면, 그 사유가 없어진 날부터 각각 그 기간을 계산한다고 나와있다. 임신한 노동자가 일을 그만두고 싶고 사업주가 이에 동의를 한다면 고용변동신고서(근로계약해지)를 써줘야 한다. 고용센터에 ‘사업장 변경신청기간 연장신청서’와 ‘임신진단서’를 제출하면 된다.
이러한 제도적 절차가 있지만 절차를 밟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이주노동자들은 임신 뒤 해고가 되지는 않을지, 해고 후 구직을 다시 할 수 있을지, 강제추방당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했다. 좋은 사업주를 만나면 이주노동자들은 출산휴가를 받고 본국에 가서 아이를 낳고 다시 한국에 온다. 어떤 사업주들은 노동자가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비자연장을 하지 못해 출국조치를 당하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예를 들어, 임신한 노동자에게 출산전후휴가를 보장해주고, 인력 공백이 생긴 사업장에는 추가인력을 우선적으로 배치하게 된다면 이러한 갈등이 해소될 수 있다. 제도가 뒷받침 된다면 임신한 노동자와 사업주의 갈등으로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임신으로 인한 차별을 개인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기사는 필자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의 지원을 받아 연구한 사례를 기반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필자 소개]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을 썼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에서 사회학 박사과정 중에 있다. 캄보디아와 한국에서 현장 연구를 했다. 지금은 한국으로 이주한 캄보디아 이주농업노동자들에 관해서 논문을 쓰고 있다. 먹거리, 이주, 젠더에 관심이 있다.
이 기사 좋아요 25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많이 본 기사
국경너머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