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수색동, 증산동, 신사동, 구산동, 갈현2동에 걸쳐 남북으로 긴 형태의 산이 있다. 봉산이다. 능선을 중심으로 동쪽은 서울 은평구, 서쪽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다. 봉산은 활엽 혼효림으로 아까시나무, 참나무류, 팥배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숲을 이루었지만, 자연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인간의 욕심으로 편백 단순림 조성이 진행되며 여러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이곳에 기댄 생명체들이 죽어가고 사라지고 있으며, 이는 생태계 불균형으로 이어져 러브버그 대량 발생 등의 문제도 만들어냈다는 진단을 받고 있다.
그래서 나영 활동가를 다시 만났다. 조사단이 지역정당 활동에서 시작됐다는 흥미로운 사실부터 지난 과정과 현재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봉산 문제는 봉산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봉산생태조사단 활동은 누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사실 은평민들레당 활동에서 시작된 거예요. 은평민들레당은, 다른 진보 정당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각각 정당을 떠난 후 쉬거나 다른 길을 모색하다 시작하게 됐어요. 저도 녹색당에 있다 2020년 총선 위성정당 사태 때 탈당했고, 이후 정치 활동은 안 해야지 했어요. 그러다 지역정당을 꿈꾸던 분들을 만나게 됐는데, 그 분들이 직접행동영등포당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듣게 됐죠. 이후 은평에서도 지역정당 논의를 한 분들이 있는데, 한번 회의에 구경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시작이 되어버렸죠.(웃음) 창립준비위원회 멤버가 되고, 발기인이 됐어요.
-은평민들레당에서 봉산생태조사단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 조사단 동료이고, 은평민들레당 창당 회의에 구경하러 오라고 했던 분이 봉산 자락 아래 산새마을이라는 곳에 살고, 전 옆 동네 살거든요. 어느 날 그 분이 봉산에서 엄청 큰 엔진톱소리가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한번 가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산에서 엄청 난리가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숲 가꾸기 사업”이라는 현수막이 붙어있고, ‘간벌, 가지치기, 고사목 제거 사업 중입니다’ 등의 말이 써져있다고요. 근데 실상은 그 구역 내 나무들을 완전히 밀어버리는 상황이었어요.
현장에 직접 가서 모습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봉산 가까이에 있었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몰랐던 거죠. 찾아 보니까 그 일대 주변이 편백숲으로 조성되어 있더라고요. 근데 그 편백나무가 봉산에 맞지 않는 나무라는 걸 알게 되면서, ‘문제가 있다, 대응을 해야겠다’ 생각하게 됐어요. 마침 은평에 생태보전시민모임이라는 곳이 있는데, 민성환 대표가 나무 전문가거든요. 같이 봉산을 둘러보고, 셋이서 나무 수종과 나이를 하나하나 기록하고 사진 찍고 숫자를 셌어요.
그 자료를 들고 은평구청에 공문 넣고, 간담회도 하고, 1인 시위도 해 봤는데 효과가 크게 있는 것 같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핫핑크돌핀스(해양환경단체, hotpinkdolphins.org)가 제주 바다 앞에서 남방큰돌고래 모니터링을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직접 가서 봤는데 벅차 오르는 감동이 느껴지더라고요. 실제 바다에서 돌고래가 사는 모습을 보는 건 확실히 다른 느낌이었어요. 이런 활동과 비슷하게 ‘봉산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을 시민들에게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하게 된 게, 새들을 관찰하는 탐조 활동이예요.
-그렇게, 새에 대해 아는 바 없이 무작정 탐조를 하게 된 건가요?
맞아요. 카메라도 없었고, 새도 몰랐고,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해야 된다 생각하면 하는 성격이어서(웃음) 바로 카메라 사고, 새 공부도 시작했어요. 처음엔 새 사진을 찍고서도 무슨 새인지 몰라 한참 찾아봤어요. 이젠 꽤 알아볼 수 있어요. 역시 공부가 힘이다!(웃음)
조사단은 은평민들레당 내 소모임으로 시작했지만, 당원이 아닌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이젠 시민모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네이처링(자연을 관찰, 기록, 검색하는 오픈 네트워크 플랫폼) 페이지를 통해 “은평구 봉산 숲 훼손을 반대하는 봉산생태조사단”(naturing.net/m/6030/summary) 활동도 하고 있죠. 봉산에 관심 있는 누구나 나무 사진이나 새 사진을 찍어서 올릴 수 있고, 조사단이 될 수 있어요.
원래 있는 다양성 숲을 없애고, 편백만 심고 있기 때문에 문제죠. 편백은 자생도 못하는데, 잘 유지되던 생태계를 파괴하고 자생하지 못하는 숲을 만들고 있다는 게 정말 큰 문제에요. 기존의 숲을 파괴함으로써 단지 나무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땅 밑에 있던 지렁이까지 다 쫓겨나는 거거든요. 완전 생물 다양성을 파괴하는 짓이죠.
또, 한 가지 수종만 심으면 기후변화나 전염병 등에도 굉장히 취약해 질 수밖에 없어요.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으면 기후변화가 왔을 때 어떤 나무는 죽어도, 또 다른 나무는 살거든요. 전염병도 마찬가지고요. 여러 생물들도 기본적으로 혼효림에서 사는 게 좋다고 하거든요. 그게 자연의 모습이기도 하고요. 단일림인 편백숲에 가보면, 실제로 새소리가 훨씬 덜 들려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죠.
-편백나무 숲이 자생하지 못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인가요?
편백나무는 온화하고 강수가 많은 해양성 기후 지대에서 살아요. 그래서 일본 온대지방, 따뜻하고 습한 곳에서 많이 산다고 해요. 물을 좋아하는 식물이라고요. 그런데 봉산 일부는 좀 척박한 편이거든요. 흙이 촉촉한 진흙 같은 게 아니라 돌가루나 마사토 같은 흙이 대부분이죠. 그런 데 심은 편백은 거의 다 죽었어요. 봉산 정남향 쪽은 정말 많이 죽었죠. 그나마 북쪽으로 기울어진 쪽은 괜찮은데 거기도 계속 사람이 물을 주고 있죠. 계속 관리하고 예산 투입하고… 이건 자생한다고 보기 어렵죠. 그나마 살아있는 편백나무도, 좋은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훨씬 더 크고 두꺼워야 한대요.
거기다 편백나무를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들풀과 나무를 계속 잘라내고 있어요. 군데군데 조금 작게 자라고 있는 참나무, 아까시나무도 보이는데 조금만 시간 지나서 가 보면 잘라버렸더라고요. 계속 ‘편백숲’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겠죠. 너무 문제라고 생각해요. 사실 이 편백숲 사업은 은평구청만의 문제도 아니에요. 산림청에서 전국적으로 하고 있거든요. 어떤 유행처럼 하는 것 같은데… 문제가 많죠.
당연히 베리어프리(barrier-free)/무장애 숲을 만드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애인과 이동약자를 위한 환경도 조성되어야죠. 다만 이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에 대한 문제 제기에요. 안산, 인왕산, 관악산 등 타 무장애숲길은 자락에 조성된 경우가 많은데, 봉산은 정상부를 횡단하는 노선으로 설계되어 있어요. 경사가 꽤 있다는 말이기도 하죠. 그래서 지그재그로 오르는 노선이거든요. 그만큼 숲을 많이 파괴한다는 말이에요. 왜 이렇게 무리한 노선을 설계했을까 좀 이상해서 정보를 찾아보니, 산자락인 낮은 지대는 다 사유지인 거에요. 그래서 개발을 못하고 오히려 정상으로 가는 노선을 설계한 거죠.
산 정상에 가면 이미 등산로가 꽤 넓어요. 그런 공간에선 기존 등산로를 조금 다듬어서 통합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등산로 옆에 또 길을 만든다는 거에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생물들의 서식처를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거죠. 예산도 줄일 수 있고요.
지금 만들어진 무장애 숲길도 ‘무장애’라고 하면서, 점자 표시는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이 숲을 계획하면서 정말 장애친화적인 공간을 만들려고 했는지 의문이 들고요. 실제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엔 어렵거나, 길을 막는 나무가 중간에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어요. 나무를 안 벤 건 잘한 일인 것 같지만, 정말 베리어프리를 고민한 건가 싶죠.
무장애숲길까지 가는 길 또한 전혀 장애친화적이지 않다는 부분도 지적하고 싶어요. 장애인과 이동약자를 환영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으면 그 곳까지 갈 수 있는 방법도 생각했어야 하지 않나요? 휠체어로 접근조차 어려운 진입로들도 있어요. 장애인들은 이 숲까지 어떻게 올 수 있을까요? 그 이동권은 보장되고 있는지도 함께 논의해 보고 싶어요.
장애인과 이동약자의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건 물론이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도 필요해요. 다만 우리 모두 지구 위에 살아가는 존재인 만큼, 지구 생태계와 여러 생명체들을 해치거나 파괴하지 않는 방법을 함께 더 치열하게 고민했으면 해요.
-봉산을 관찰한지 얼마나 되었죠? 어떤 변화를 목격한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1년 좀 넘은 것 같아요. 작년 4월부터 했으니까요. 1년 정도라 큰 변화를 목격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전과 달리 보이는 게 있어요. 지금 봉산에 편백나무를 2014년부터 심었는데, 얘기했듯이 정남향 부분의 편백나무는 거의 죽었거든요. 그냥 한번 가서 슬쩍 보면 몰라요. 잠깐이라도 서서 관찰하다 보면, 자세히 나무 하나 하나를 보다 보면 보여요. 나무가 건강하지 않고, 죽어 가는 게요.
나무, 새, 숲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니 알게 되는 것도 점점 늘어나는데요. 여러 지자체에서 ‘숲 가꾸기 사업’이라고 해서 고사목을 베어버리는 일들을 많이 한단 말이죠. 근데 고사목이 생물 다양성을 풍부하게 한다는 거에요. 함부로 베어버리면 안 되는 거죠. 큰 고사목이 나뭇가지만 조금 남아있는 걸 발견하고 그걸 유심히 보면 거기 꼭 새들이 앉아 있어요. 직박구리처럼 높은 데 앉는 걸 좋아하는 새들이 있거든요. 그들은 거기 앉아서 먹이 활동도 하고 영역 활동도 하고 또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도 하죠. 고사목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거에요. 또 쓰러진 고사목은 자연스럽게 분해되면서 땅의 양분이 되기도 하고요. 사람 다니는 길에 위험할 것 같다고 하면 벨 수도 있긴 하지만, 숲에 있는 것들은 그냥 좀 뒀으면 좋겠어요.
-탐조하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한번 등검은말벌이라는 외래종 말벌 집을 본 적이 있어요. 아까시나무에 왠 수박만한 뭔가가 달려있어서 사진을 찍었더니 등검은말벌 집이더라고요. 어떻게 하지, 누굴 불러야 하나 했는데, 위험한 상황이라 일단 그냥 뒀어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보니까 새들이 그 집을 파서 애벌레들을 다 먹은 거에요. 말벌 집이 초토화됐더라고요. 종종 사람들이 말벌이 문제다, 어떤 해충이 문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생태계만 지켜진다면 이렇게 또 사라진다는 거죠. 억지로 살충제를 마구 뿌리는 것보다 새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된다면, 새들과 우리가 공존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좋겠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봉산에선 얼마나 많은 새들을 보셨나요?
현재까지 72종의 새들을 기록했어요. 사진과 소리로요. 늘 72종이 있다는 건 아니고, 철새나 지나가는 새들도 있긴 하지만, 이렇게 여러 새들이 봉산에 사는 줄 몰랐는데 말이죠.
희망찬 대답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요.(웃음) 우울증 심했던 적이 있어요. 진짜 막 인간 다 없어져야 해,(웃음) 이런 생각하면서 힘들었는데 정말 신기하게 탐조 활동하면서 괜찮아졌어요. 처음에 이 활동을 할 땐 ‘봉산이 더 이상 파괴되지 않게 지켜야 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지켜야 한다’는 말을 많이 썼어요. 그렇게 무언가를 지켜야 한다는 건 좀 큰 일이잖아요? 우린 작은 존재인데, 그렇게 생각하면 부담이 생기는 것 같아요.
도나 해러웨이(미국의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자로, 몸/인간-과학/기술-자연/생태 사이에 새로운 상상력과 철학을 제시함) 책을 읽다가, ‘우리가 지구를 전부 파괴해버릴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것조차 인간중심적이고 인간우월적이라는 걸 깨달았는데요. 새를 관찰하면서도 그랬어요. 새들 되게 작잖아요. 사람에 비하면 한없이 작은데, 이 새들이 산에서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거예요. 내가 보기엔 파괴되어 버린 숲이지만, 그 안에서도 열심히 울면서 보란 듯이 살고 있는 거죠. 그게 멋있더라고요. 나도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새들을 보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된 거죠.
물론 지금도 바다 가면, 이제 바다를 즐기지도 못해요. 여기 저기 버려진 쓰레기들과 망가진 환경이 보이니까요. 답답하고 화나고 그러는데, 봉지 하나 들고 ‘내가 쓰레기 전부 다 주울 순 없지만, 이 한 봉지만 줍자’ 해요. 그럼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죠. 어쨌든 하나라도 하면 괜찮으니까요. 지구는 어차피 나 혼자 구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렇다고 모든 걸 포기하고 막 살진 말고, 여러 존재들과 계속 뒤섞여 잘 사는 방법을 고민하며 하나씩 천천히 행동해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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