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라는 해피엔딩’

태국 GL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와 현실 커플

박주연 | 기사입력 2024/08/20 [12:58]

‘결혼이라는 해피엔딩’

태국 GL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와 현실 커플

박주연 | 입력 : 2024/08/20 [12:58]

2023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에 따르면, 현재 청년(19세~34세) 중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중은 36.4%로 10년 전에 비해 20.1% 감소한 수준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엔 28%로, 남성의 43.8%에 비해 15.8%나 낮다. “두 사람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을 믿거나, 바라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이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 있다. 통계는 여성/남성 이성애 결혼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욕망이나 욕구 또한 결혼을 선호하지 않는 ‘대세’와 비슷할 수도 있지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정확한 건 모른다. 이 사회가 그 질문을 제대로 던진 적이 없으니까.

 

▲ 태국 드라마 시리즈 〈더 시크릿 오브 어스〉(The secret of us, ใจซ่อนรัก) 결혼식 장면. 언이 파라다의 어깨 위에 합장한 손을 올리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웃고 있다. (출처: ใจซ่อนรัก Secret of us Series X 계정)


어쩌면 성소수자(특히 현재 결혼이 불가한 동성 커플의 경우)는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을 여전히 꿈꾸는 비율이 좀더 높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올 여름 내 마음을 뜨겁게 했던 태국 GL(Girl’s Love, 여성들 간의 로맨스를 다룸) 드라마 〈더 시크릿 오브 어스〉(The secret of us, ใจซ่อนรัก) 때문이다.

 

태국 공중파 채널인 CH3에서 직접 제작하고, 6월 24일부터 방영해 8부작으로 마무리 된 〈더 시크릿 오브 어스〉엔 ‘파라다’와 ‘언’이라는 두 주인공이 나온다. 둘은 각자 유학 중이던 시절 해외에서 만나 한 눈에 끌림을 느낀다. 빡빡한 타국살이와 공부, 아르바이트 생활 속에서 서로 금방 친해지고 의지하게 된다. 그러다 파라다의 발렌타인 데이 꽃다발 프로포즈로 둘은 사귀게 되고, 동거를 시작한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두 사람. 하지만 그 둘을 지켜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몰랐다. 태국에서 언의 엄마 수술 소식이 들려온다. 큰 수술이라는 사실을 알고 절망하는 언을 위로하는 파라다. 파라다는 자신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언의 어머니가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엄마에게 부탁한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 보였지만, 파라다의 엄마는 태국에 들어온 언을 불러 “너네 엄마 수술해줄 테니까, 내 딸이랑 헤어져.”라고 강요한다. 심지어 파라다에겐 약혼남이 있다고 거짓말까지 하며 언을 몰아세운다.

 

언은 결국 파라다에게 헤어짐을 선언하고, 두 사람은 서로 오해를 가진 채 이별을 맞이한다. 그리고 2년 뒤, 태국에서 파라다와 언은 광고를 의뢰한 병원장의 딸인 의사와, 그 광고에 출연할 신인 배우로 재회한다.

 

▲ 〈더 시크릿 오브 어스〉는 CH3 홈페이지와 CH3 유튜브 채널(https://url.kr/o37a6o)에서 볼 수 있다.


〈더 시크릿 오브 어스〉의 주 내용은 서로에 대한 오해와 상처를 가졌지만 그만큼 그리움과 사랑도 품고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로맨스’ 장르의 전형적 틀을 따라간다. 물론 로맨스를 극대화하기 위한 위기도 설정되어 있다. 바로 엄마의 반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두 사람의 관계의 불안정성이다.

 

파라다의 엄마는 파라다가 유학 시절부터 사람을 시켜 딸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걸 통해 자신의 딸이 동성애자라는 것, 그리고 언과의 관계를 알게 된다. 파라다의 엄마는 처음부터 마지막 직전까지 파라다와 언의 관계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억지로 파라다의 이성애 결혼을 밀어붙이고 그에 반발하는 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너,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할 수 있니?”

 

극 중에서 파라다의 엄마는 ‘불가능한 결혼’을 이유로,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곧 이유가 안 되는 핑계가 될 예정이다. 태국은 지난 6월 18일, 상원 국회에서 동성혼 법제화가 승인됐기 때문이다. 130명의 상원의원이 찬성, 반대는 4명에 불과했다. 마지막으로 국왕의 승인이 필요하긴 하지만 이는 형식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그것이 완료되고 120일 후면 법이 발효된다. 이로서 태국은 2019년 대만, 2023년 네팔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가 됐다.

 

현실에서라면 파라다 엄마는 이제 딸의 사랑을 ‘반대’하기 위해 다른 핑계를 대야 한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핑계를 댈 수도 있고, “결혼이 가능하다고 해서, 차별적인 세상이 변할 줄 아니?”, “커밍아웃은 여전히 쉽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거릴 거야”, “남들은 해도 너는 안 된다” 등등.

 

하지만, 파라다도 받아칠 이야기가 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성소수자를 차별/혐오하는 종교를 믿는 건 아니다(사실 태국은 불교 신도의 비중이 높아서 종교적 이유를 댈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거다). 그리고 자신이 믿는 종교의 어떤 교리가 타인을 혐오할 근거가 될 순 없다. 물론 동성혼이 가능해져도, 세상이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을 거다. 사람들의 인식과 문화가 변화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다만 이제 ‘동성 커플도 이성 커플과 마찬가지로, 원하면 결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성소수자/동성애자를 ‘다르게’ 보는 시선은 조금 더 쉽게 변할 수 있다. 동성 커플도 결혼할 수 있으며 가족을 만들 수 있다는 전제가 깔리는 순간, 성소수자/동성애자에 대한 오해와 편견, 차별과 혐오가 변화할 여지가 더 많아진다.

 

▲ 〈더 시크릿 오브 어스〉 울먹이는 표정의 파라다와, 파라다의 엄마


이런 사회라면 파라다 엄마에게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린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동성 커플의 존재를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성소수자의 삶이 ‘있는 그대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엄마가 가진 불안과 걱정 그리고 ‘반대’도 사라질 테다. 극 중에서 파라다 엄마가 결국 파라다와 언의 지지자가 되는 건 둘의 견고한 마음을 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라다 아빠가 자신과 달리 처음부터 “여자끼리 사랑하는 거, 그게 어때서요? 우리 애가 행복하면 됐지.”라며 계속 지지를 보여 준 영향도 있다. 사실 〈더 시크릿 오브 어스〉에서 파라다와 언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파라다의 엄마뿐이다. 직장 동료, 친구, 부모 모두 동성 커플에 아무런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

 

〈더 시크릿 오브 어스〉는 너무 진부한 결말일지 모르는 결혼식+신혼여행 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많은 팬들, 특히 퀴어/성소수자 팬들은 열광했다. 그깟 결혼식이 뭐라고 왜 그렇게 기뻐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그걸 원하니까. 파라다와 언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현실의 우리 또한 행복했으면 좋겠어서. “왕자와 공주는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엔딩이 동성의 연인들에게도 가능한 일이라는 걸 보고 싶어서.

 

실제로 ‘결혼하면 해피엔딩’이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결혼이 해피엔딩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무수한 사례로 증명되어 있고, 결혼이 필요치 않은 사람도 많다. 많은 청년들의 삶은 ‘결혼하면 해피엔딩’이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갈 만큼 여유롭지도 않다. 당연히, 결혼이 모두에게 해피엔딩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해피엔딩’이 누군가에게만 열려 있는 길이라면 그건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이와 관련해 한국은 여전히 더딘 걸음을 하고 있지만, 지난 7월 18일 역사적인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판결에 이어, 동성 동반자에 대한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것이다.(참고: 혼인평등으로 가는 길, 첫 단추가 꿰어졌다 https://ildaro.com/9597) 대법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동성 파트너를 피부양자로 인정하지 않고 보험료를 부과 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이 불이익을 주어 ‘사실상 혼인관계에 있는 사람과 차별하는 것’으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여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우리 사회에 동성 커플에 대한 차별이 있고, 이것은 시정해야 한다고 짚은 것이다.

 

▲ 태국 드라마 시리즈 〈더 시크릿 오브 어스〉(The secret of us, ใจซ่อนรัก)


〈더 시크릿 오브 어스〉 마지막 방송이 끝난 그 주, 나는 신부가 둘인 동성 커플 결혼식에 참석했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웠고 여러 명의 축사와 축하 공연이 이어졌으며 두 신부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었다. 신나게 신부들이 입장하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더 시크릿 오브 어스〉의 두 신부와 현실 속 두 신부가 해피엔딩을 맞이하기 위해선, 서로의 파트너와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 수 있어야 하고, 이들이 사회에서 숨겨지거나 지워진 존재로 여겨지지 않아야 하며, 필요할 때 보호자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사회에서 차별과 혐오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결혼을 선택하든 아니든, 모두가 각자 원하는 해피엔딩을 꿈꾸고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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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Yun 2024/08/22 [11:37] 수정 | 삭제
  • 재밌다. 공중파에서 이런 드라마 제작돼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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