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소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수용, 격리, 박탈』 서평: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

최예린 | 기사입력 2024/09/07 [19:35]

‘수용소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수용, 격리, 박탈』 서평: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

최예린 | 입력 : 2024/09/07 [19:35]

2018년 즈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팬데믹과 엔데믹을 거치면서, ‘수용과 격리’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을 이끈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기획한 『나, 함께 산다』(2018)와 『집으로 가는, 길』(2022)이 세상에 나왔으며, ‘장애여성공감’은 『시설사회』(2020)를 펴냈다. 그러나 ‘수용과 격리’의 문제를 학술적으로 정면에서 다루는 책은 드물었다.

 

이러한 아쉬움을 달래 주듯 최근 『수용, 격리, 박탈』이 출간되었다. 현실과의 접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학술적인 실천을 꾀하는 책이다. 『수용, 격리, 박탈』은 밀항, 수용소, 재일조선인에 주목한 책 『주권의 야만』(2020)과 시설 밖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유지하는 사회를 비판한 『시설사회』의 문제의식을 잇고 있다. 책임편집자인 신지영은 서문에서 두 권의 책에 존경을 표하면서 『수용, 격리, 박탈』이 지닌 독특한 의미와 위치도 강조한다.

 

▲ 『수용, 격리, 박탈 : 세계의 내부로 추방된 존재들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신지영 엮음, 김보람, 쉬징야, 김예림, 호시나 히로노부, 조경희, 김아람, 권혁태, 김한상, 란스치, 중수민, 현무암, 다카야 사치, 심아정, 나영정 글, 방수미-장수지 번역, 서해문집, 2024)


『수용, 격리, 박탈』은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고, 학술과 실천 사이를 오가며, 수용·격리·박탈의 경험을 발굴한다. 무엇보다 이 책은 멀리 나아간다. 수용소 문제를 식민주의, 인/종주의, 가부장제, 삶터의 파괴 등으로 고통 받는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함과 동시에, 인간 아닌 ‘비인간 존재’에게까지 가닿을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지금, 여기‘

 

『수용, 격리, 박탈』은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을 말한다. 한센인 수용소, 포로수용소, 오늘날의 외국인보호소 및 공중화장실까지 다양한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화된 존재들이 책에 등장한다. 그러나 단지 역사 속의 수용소를 기록하는 일에 멈추지 않는다. 수용소를 만들고 유지하는 사회 구조에 주목하여 수용소의 경험을 현재화한다.

 

방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는 만큼 저자들의 배경과 위치도 다양하다. 타이완, 일본, 한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15명의 사학자, 사회학자, 문학자, 활동가들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제국의 형성과 해체, 국민국가 만들기’ 속에서 일어난 피난, 이동, 송환, 수용, 추방, 유예, 떠날 수 없음 등에 주목한 글 15편이 총 5부에 걸쳐 펼쳐진다.

 

1부에서는 공해, 식민주의, 전쟁으로 마을 공동체의 관계망이 파괴되며 ‘국내 난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 ‘사회라는 거대한 수용소’에서 ‘난민화되는 존재’의 삶을 말한다. 2부에서는 수용소를 폭력과 배제가 만연한 ‘사회라는 수용소’로부터의 피난소처럼 여겼던 특정 존재의 감각을 조명한다. 3부에서는 ‘태평양전쟁’ 시기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겹쳐져 발생한 폭력과 위계를 이야기한다. 4부에서는 타이완의 식민지기와 냉전 시기의 수용소에 초점을 맞춰, 타이완의 상황이 동아시아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살핀다.

 

5부에서는 지금-여기와 동아시아의 수용소의 역사를 잇는다. 일본 입관수용소, 한국의 ‘외국인보호소 폐지운동’, ‘장애인 탈시설운동’과 ‘모두를 위한 화장실 운동’의 접점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수용소 없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도록 손을 내민다.

 

누가, 어떻게 ‘난민’이 되는가

 

이토록 다양한 위치의 글들을 하나의 ‘책’에 담은 의도가 무엇일까? 책임편집자 신지영은 이 책의 의도가 동아시아의 수용소를 종합적으로 정리하거나 통합적으로 이론화하는 일과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고 말한다.(27쪽) 그런 점에서, 656쪽에 달하는 『수용, 격리, 박탈』은 손쉽게 정리되고 통합되는 것을 거부하는 책이기도 하다. 책 속의 다채로운 입장의 글들을 따라 읽다 보면, ‘수용소’를 가지런한 정의 안에 안전하게 포섭하는 일을 경계하게 된다.

 

동시에 이 책의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가지 문제의식들이 있다. 각각의 글에서 저자들은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누가, 어떻게 ‘난민’이 되었는지 묻는다. 또한 ‘난민’ 개념을 국내 난민과 국외 난민으로 구체화함으로써 전쟁·공해·재해로 국내 내부에서 떠밀린 존재들을 ‘국내 난민’으로 가시화한다.

 

‘지붕 없는 감옥’, ‘벽 없는 감금’이라는 말처럼,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사회 구조’ 자체가 ‘수용소’화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수용소라는 장소를 용인하는 사회, 그래서 수용소가 있는 사회는 특정 존재를 국민이 아니라고, 불온한 존재라고, 더러운 존재라고 낙인찍고 배제하고 차별하도록 만든다. 수용소를 유지하고 구성하는 구조에서 모두 연루되어 있으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자고, 이 책은 끈질기게 외치는 것만 같다.

 

책에 실린 모든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한국과 동아시아의 역사와 현재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질문한다. 수용소 없는 세상, 나의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 『수용, 격리, 박탈』이 품고 있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동아시아의 수용소 안에서의 모순되고 복합적인 관계를 섬세하게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수용소 속, 존재들의 다층적 경험과 복합적 위치

 

이 책의 매력은 ‘수용소’ 속의 한 존재의 다층적인 감정과 경험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책에 실린 글들은 ‘수용소 및 수용소화된 사회’에서 살아갔던 존재가 식민주의와 국민국가의 형성 속에서 어떻게 삭제되었는가를 드러내며 이들의 경험을 역사화하고 정치화한다. 그러나 수용소에서 살아갔던 존재를 무력하거나 불행한 존재로 그리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수용소화된 삶을 살아가는 한 ‘존재’의 생생한 기억과 시선들과 만난 순간들이 있었다. ‘수용소’ 속의 삶에 대한 예상을 배반하는 모순되고 복잡한 순간들이었다.

 

▲ 《만수과》 1937년 6월호 표지. 《만수과》는 일제 식민지 시기 타이완의 한센병 환자 시설 ‘낙생원’의 공식 간행물이다. (호시나 히로노부, 김보람 옮김, 『수용, 격리, 박탈』 179쪽)


첫째, ‘지배/피지배’ 구도가 반전된 목소리와 만났다.

“웅성거리며 신기하다는 듯이 엿보며 지나가는 참관인에게 냉소 지어 보이네 /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나는 몇 번이나 쓸쓸히 헤아리고 있는가.” -다케다 시로(武田史郎), 《萬壽果》(만수과, 오래 살게 해주는 열매라는 뜻으로, 파파야를 칭하기도 함), 第6卷第2號 1939년 6월, 39쪽. 시의 제목이 없다. /호시나 히로노부, 김보람 옮김, 『수용, 격리, 박탈』 183쪽

 

이 시구는, 일제 식민지 타이완의 나병(한센병) 환자 시설인 ‘낙생원’에서 가장 오래 지냈던 입소자 다케다 시로(武田史郎)가 중증 병동을 방문한 이들의 시선에 대항해 남긴 것이다. ‘낙생원’의 중증 병동 환자는 결절과 궤양으로 시설 내에서도 구경거리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다케다 시로의 시구는 보는 사람과 보이는 사람 사이의 위계를 뒤집고 해체한다. 나는 이 시를 통해서, 다케다 시로의 눈으로 참관인들의 얼굴을 본다. 참관인의 눈으로 한센병 환자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째, 피해와 가해가 중첩된 위치에서 어떤 윤리가 가능할지를 고민하게 하는 존재들과 만났다. 태평양전쟁 시기, 일본군이 관리했던 포로수용소의 조선인 혹은 타이완인 포로감시원은 식민주의의 피해자였지만 포로들에게는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의 위치에 있었다. 책에 실린 여러 글은 피해와 가해가 중첩된 위치에 놓여있을 때, 어떻게 ‘수용소화된 삶’에 대한 서로의 연결과 공감이 가능할 지 묻는다.

 

그중 신지영의 글은 해방 이후 전범으로 지목된 조선인 포로감시원이 식민주의와 전쟁의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구조적 가해성’을 통해서 공감하는 순간을 고찰한다. 식민화되고 수용소화된 사회에서 자신의 피해자성에만 파고드는 일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성찰하는 행위는 다른 피해자와 연결될 수 있는 윤리적 행위라는 것이다.

 

▲ 오무라 수용소의 전경(좌)과 아침 점호 후 직원이 수용소 방문을 여는 모습(우)이다. 〈밀항〉(NHK, 1980)의 한 장면. (조경희, 『수용, 격리, 박탈』 205쪽)


셋째, 수용소를 피난소처럼 여긴 아이러니와도 마주했다. 일본의 나가사키 현에 위치한 ‘오무라 수용소’는 1950~1980년대에 강제송환의 대상이 된 한반도 출신자를 수용한 시설이었다. 특정 시기나 조건에서, ‘여성’들에게 오무라 수용소는 아이를 낳고 기르고 살림살이를 하는 공동생활의 장소였다. 오무라 수용소의 경험을 구술한 제주 출신 여성 E는 함께 김장을 하고 김치를 먹은 ‘공동의 시간’을 선연히 이야기했다. 

 

조경희의 글은 세대, 젠더, 아이의 유무, 수용소 이전의 삶에 따라서 수용소에 대한 경험을 모두 다르게 구술했음을 밝힌다. 물리적인 ‘수용소’의 경험을 마치 사회로부터의 ‘피난소’처럼 느꼈다고 구술한 경우도 있었다. 이는 그만큼 사회 전체가 특정 존재를 배제하고 박탈하는 ‘수용소화된 상태’였음을 드러낸다.

 

넷째,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하는 순간들과도 만났다. 공해 문제로 마을 자체가 수용소화된 사례가 그것이다. ‘아시오광독사건’을 다룬 김보람의 글은 공해 피해민 사이의 위계를 살핀다. 이어서 광산 유해물질로 인한 오염으로 비/인간 존재가 난민화되는 지점을 포착한다. 당시 일자리를 찾아 피해지를 ‘자유롭게’ 떠날 수 없었던 여성·노인·어린이·비인간 존재들은 피해지에 남아 빈곤 및 ‘광독병’에 방치되어야만 했다. 오염으로 인간과 자연 간의 관계 및 마을 공동체의 파괴가 진행되었다.

 

이 글은 공해로 인한 자연의 시공간성의 상실을 짚으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공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연’을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 채굴 가능한 자원으로만 취급하는 구조 그 자체임을 밝힌다.

 

다섯째, 이러한 복잡하고 뒤엉킨 장면들 속에서, 퀴어한 연결과 힘들은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마지막으로 남았다. 이 질문은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이 구체화된다. 한국의 ‘외국인보호소’, ‘장애인 거주시설’, ‘공중화장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세 장소는 난민과 이주민, 장애인, 퀴어 등을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고 차별하며, 어느 공간에 대한 특정 존재의 진입과 이동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연결점을 가진다.

 

마지막 부는 오늘날 한국의 수용소화된 장소와 관련된 활동을 조명하며,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존재들이 서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을 모색한다. 심아정은 ‘외국인보호소 폐지운동’과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접점을 설명한다. 나영정은 ‘장애인 탈시설 운동’과 ‘모두를 위한 화장실 만들기 운동’의 연결을 시도한다. 비규범적인 몸들이 관계 맺고 마주칠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을 만드는 일은 그 자체로 수용소화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퀴어한 힘을 가진다.

 

▲ 모두를 위한 화장실 도입 사례. ‘오키나와 우라소에시, 파르코 쇼핑몰 화장실’ [출처] 한국다양성연구소 홈페이지 


언급한 내용 외에도, ‘수용소’ 속 삶의 복합적인 위치성과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책 속에 무수히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이 수용소에 대한 역사적·인류학적·문학적 접근을 통해 한 발 더 깊숙이 나아간 지점이 여기에 있다. 다양한 분야의 학술적 접근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을 일종의 ‘사상적인 질문’으로 만든다.

 

‘저항’을 모색하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이 책은 ‘저항’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소리, 몸짓, 냄새 등을 담고 있다. 수용소화된 관계, 사회, 삶을 벗어나기 위한 존재들의 ‘저항’의 흔적들이 보다 많은 이에게 가닿았으면 한다.

 

책에 나타나는 개별 존재의 경험은 팬데믹, 기후재난, 전쟁 속에서, ‘수용소화된 삶’을 삶아가야 하는 존재의 ‘고통’이 아니라 한 존재의 ‘힘’을 비추고 서로를 연결시킨다. 그렇다면, 수용소화된 존재의 ‘힘’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수용소에서 살아가는 존재의 복잡하고 이질적인 삶의 형태 그 자체가 아닐까? 무수히 많은 존재 간의 연결점에 서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수용소 없는 세상을 위한 상상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처럼 책에 그려진 수용, 격리, 박탈된 개별 존재의 경험은 세상의 모든 위계, 체제, 벽, 선을 넘어 서로를 부르는 힘을 가진다.

 

비인간 동물의 위치에서 수용소를 본다면?

 

한편, 나에게 『수용, 격리, 박탈』은 동물을 감금하는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을 보다 넓혀 주었다. ‘인간’의 위치가 아닌 ‘동물’의 위치에서 수용소를 본다면, 수용소 문제의 근본을 이루는 인/종주의와 식민주의를 보다 깊이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

 

‘동물 수용소’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최근, ‘공장식 축산’과 ‘지역 소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에 ‘스마트축산’ 시설을 만들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스마트축산’이란, 대형화된 축사에서 도살, 가공, 분뇨의 에너지화 등을 한 곳에서 최신 기술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더욱 외진 지역, 더욱 은폐된 공간, 더욱 거대한 장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일어나는 ‘동물 수용소’의 실상을, 첨단 기계화라는 이름으로 감추는 일에 다름없다.(‘스마트축산’과 관련된 이야기는 모두 〈살처분폐지연대〉의 동료들에게서 배운 것이다.)

 

동물을 감금하고 동물의 삶을 빼앗는 ‘동물 수용소’를 ‘첨단기술’이라는 이미지로 은폐하고 더욱 큰 규모로 키우려는 세상에서 수용소 없는 세상을 상상하는 일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간’으로서 ‘동물 수용소’라는 구조에 연루되어 있음을 인식하면서, 내가 서 있고자 하는 ‘동물’의 위치에서 ‘동물 수용소’를 만들고 유지하는 구조와 그 효과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수용, 격리, 박탈』은 답변을 대신하여 묻는다. 자신의 수용, 격리, 박탈의 경험이 다른 존재의 수용, 격리, 박탈의 경험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지 말이다. 인문학적 사유를 품은 이 책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절실하고 중요한 질문처럼 느껴진다. 이 질문은 자신의 복합적인 위치를 돌아보게 만들며, 나의 위치에서 어떻게 다른 존재와 연결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게 만든다. 

 

‘수용소 없는 세상’을 계속 상상하며, 책 안팎의 목소리와 연결되길 바라면서도, 그 연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쉬워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수용, 격리, 박탈』은 끈질기게 성찰하게 한다.

 

[필자 소개] 최예린. 모든 존재들이 자신의 시간과 리듬에 맞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꾼다. 세상에 모르는 일이 너무 많아 세상을 향한 공부를 이어나가고 있다. 대학원에서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선생님들에게 앎에 대한 태도와 의미를 배우는 중이다. 〈기후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 및 〈살처분폐지연대〉에서 만난 이들에게 의지하며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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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리 2024/09/17 [15:30] 수정 | 삭제
  • 잘 읽었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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