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페이크 성폭력 사태…‘정치가 제 역할 못한 것’박지현‧장혜영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개최딥페이크 성폭력을 비롯한 디지털 성폭력 사건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는 요즘이다. 아는 사람, 친구, 동료, 심지어 엄마와 여동생/누나 등의 사진과 포르노 이미지/영상을 합성하여 유포하는, 일명 ‘지인능욕(지능)’이라 불리는 범죄 행위가 10대 남성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까지. 그뿐인가. ‘여군 능욕’, ‘여교사 능욕’, ‘여기자 능욕’ 등 특정 직업군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성폭력 사건도 발생했다. 가해자의 수도, 피해자의 수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많은 이들이 충격에 빠졌고, 다수의 여성들은 불신과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소라넷 사태’, ‘텔레그램 N번방’ 등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되고 오히려 확산되고 있는 실정에, ‘한국 사회의 실패’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은 아직 뜨겁지 않다. 정확한 실태 파악과 원인 분석은 피한 채 탁상공론에 그치는 말로 지금을 무마하고자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또다시 현실을 호도하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도 있다. 여기에, 두 여성 정치인이 과감히 길을 터는 자리를 마련했다.
딥페이크 성폭력 사태, ‘사회적 신뢰’의 붕괴 초래했다
박지현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이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 정치, 이번에는 제대로 해결하자!〉를 연 것이다. 토론회 참여자 모집이 하루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큰 관심을 받았다. 9월 5일 저녁 서울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열린 토론회는 장혜영 전 의원 유튜브 채널로도 라이브 중계됐다. 토론회엔 박지현, 장혜영 씨 외에도 딥페이크 성폭력 피해자(대독), 원하영 고대문화 편집위원, 김수진 초등성평등교사모임 ‘아웃박스’ 교사,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손수현 배우(영상 참여), 정지혜 세계일보 기자,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이 발언했다.
장혜영 전 국회의원은 “먼저 사과를 드리고 싶다”며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우리 사회의 한 사람의 성인으로서, 청소년과 청년들, 이 사회와 이웃을 믿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성실히 살아온 모든 시민들에게 이런 사회를 마주하게 해서 정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다.”는 말로 입을 뗐다. “(디지털 성폭력 관련) 대책을 말하기 전에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청소년보다) 더 많은 시간과 권한을 가진 어른들의 책임이고,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오늘 꼭 드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피해자와 많은 이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 공포와 불신의 감정은 너무 정당한 것이며, 이건 평가절하되어선 안 된다. 정치를 포함한 공적인 영역에서 제대로 존중하고 이를 들여다 봐야 하는 책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현재 디지털 성폭력은 대한민국의 사회적 신뢰에 붕괴를 초래하는 아주 큰 원인”이라 짚으며, “이런 사회에선 그 누구도 제대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N번방’ 이후에도 디지털 성폭력, ‘기업의 방관’ 속에 계속돼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 규제’에 맡겨서는 해결 못한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019년, 추적단불꽃 활동가로 활동하며 N번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쫓아다니던 5년 전과 지금 달라진 것이 없다”며 한탄했다. 피해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부분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에 반해, “가해는 오히려 더 쉬워졌다.” “이전엔 일부 가해자가 다른 가해자들에게 부탁을 하거나 돈을 제공해 원하는 여성의 사진/영상을 합성해 딥페이크물을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AI봇을 이용해 누구든 제약 없이 합성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주로 텔레그램이 가해 행위의 온상으로 언급되지만, X(구 트위터), 디스코드 등 여러 플랫폼에서 디지털 성폭력이 일어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지현 씨는 “범죄 현장인 플랫폼은 해결의 주체임에도 수사에 잘 협조하지 않고, 진행 현황을 따로 알려 주지도 않는다. 범죄가 발생해도 처리 시스템이 미비하다. 또한 경찰에 신고해도, 플랫폼 기업이 경찰에 정보를 제공하기까지 오랜 시간 소요되는 경우가 많은 점 등으로 수사와 해결에 여전히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다. 특히 기업의 방관을 큰 문제로 지적했다. “분명히 피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나몰라라 일관하는 기업 역시 디지털 성범죄의 공범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9월 1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은 딥페이크 등의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사이버안보기본계획’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그 내용에 포털·플랫폼 사업자 ‘자율 규제’를 강화하도록 조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플랫폼 사업자의 자율 규제에만 맡겨서 벌어진 상황이 지금의 대한민국”이라고 지적한 박지현 씨는 “‘자율 규제’는 딥페이크 범죄를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의 해결에 한발자국도 제대로 다가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온라인 플랫폼의 ‘의무’를 법령에서 정하고, 시행령 및 시행규칙을 통해 준수사항을 구체화해 위반 시 제재하게 만들어야 한다. 해외 플랫폼 기업이 규제를 잘 따르지 않는다면, 규제를 따르게 하는 것 역시 국가의 역할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또한 “표현의 자유를 핑계 대며 자율규제를 이야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미성년자 대상으로 포르노를 제작, 소지, 유포하는 걸 허용하는 나라는 전세계 어디에도 없다. 정부는 자율규제를 이야기할 게 아니라 행정력을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폭력’ 개념도, ‘성인지 감수성’도 빠진 폭력예방교육 실태
성교육, 성평등 교육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김수진 교사는 “요즘 딥페이크 사태로 공문도 많이 내려오고 관련 수업을 하라는 말도 계속 나오지만, 사실 교육이 없는 건 아니”라며 “경기도교육청 기준, 2024년 폭력예방교육은 연간 8시간, 성폭력예방교육은 연간 4시간, 성교육은 연간 20시간 이상 하라고 되어있다. 그에 맞춰 교육도 한다. 하지만 그 교육에 정말 알맹이가 있는가? 라고 한다면 대답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디지털성범죄 예방교육 플랫폼 〈디클〉에 업로드된 초등학생용 폭력예방교육 영상은 딥페이크 관련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한 남학생이 다른 남학생의 사진을 ‘개그 사진’으로 합성해 동의 없이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친구가 불쾌하다고 하자 잘못을 깨닫고 사과하는 내용이다. 이 영상은 학교에서 디지털성범죄를 어떻게 다루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학교에서 말하는 폭력예방교육에는 ‘성폭력’이 없다. 동의와 존중이라는 SNS에티켓만 있을 뿐이다. 왜 성범죄 피해자의 다수가 여성인지, 디지털 성범죄가 ‘젠더 기반 폭력’인지도 말하지 않는다.”
교사들의 인식 또한 문제적이다. 김수진 교사는 “교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딥페이크 관련 폭력예방 수업 자료를 게시했더니, 어느 교사가 게시글에 ‘성범죄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기인하는 것으로, 사회 구조와는 관련이 없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것이 2024년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그동안 우리 ‘교육’이 정말 충분했는지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사실 아무런 교육도 하고 있지 못했다. 오히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폭력과 혐오를 방관, 옹호하고 있었다.”라고 토로했다.
이번 사태로 불안을 호소하는 여성 청소년들 중 한 명이 자신의 딸이라고 밝힌 백운희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지금이라도 당장 “포괄적 성평등 교육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학교 현장에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결국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윤리적으로, 무엇을 위해 활용할 것인지의 문제다. 이 문제의 고리를 끊어내려면 기술을 비판적, 윤리적으로 활용하는 법과 여성을 존엄한 인권을 가진 동료시민으로 인식하고 안전한 관계 맺음과 ‘경계’를 살피는 포괄적 성교육이 함께 필요하다.”
백운희 활동가는 “양육자들이 성교육을 사교육으로 받고 있는 실정인데도 오히려 교육과정에선 성평등, 섹슈얼리티, 재생산권 등의 용어가 사라지고 성평등 교육 도서가 금서로 지정되어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아동·청소년들이 성평등 교육 및 성교육을 배울 수 있는 통로가 없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 이슈를 학교에 떠넘기는 방식이 아닌, 충분한 예산 확보와 인력 양성 및 배치, 지원 업무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디지털 성착취의 진앙…세계가 한국의 대응 방식 지켜본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불법촬영 범죄가 심각한 국가로, ‘몰카’라는 말이 영어 ‘Molka’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부끄러운 상황이다. 이젠 딥페이크 성폭력의 국가로 알려질지도 모른다. 손수현 배우는 “미국 보안서비스 업체(시큐리티 히어로)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딥페이크 피해자의 99%가 여성이며 그 중 가장 높은 비율인 53%가 한국 국적(이어 미국이 20%, 일본이 10%), 특히 한국 가수와 배우의 피해 비율이 높다고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보고서를 인용하며 딥페이크 착취물을 만들고 유포하는 ‘세계적인 문제의 진앙이 한국이라는 걸 시사한다’고 했다”는 점을 언급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도 “한국이 가장 심각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한국이 어떤 대응을 할지 주목할 것이며, 어떤 급진적인 정책을 펼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도 정치권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특히 정부는 문제 해결의 의지를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정부의 디지털 성범죄 피해대응 예산 감축” 문제를 짚었다. “2025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사업설명자료에 따르면 내년 ‘디지털 성범죄 피해 대응 예산’은 8억4천100만 원으로, 올해 배정 받았던 12억2천800만 원보다 31.5% 감액,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를 운영하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 내년 예산도 올해보다 6.5%(9억5천여만 원) 삭감된 137억3천500만 원으로 편성됐다.”
〈딥페이크 성폭력 박멸을 위한 긴급토론회〉 참여자들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해야 한다, 특히 정치가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은 이번 사태를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선포했다.
‘소라넷 폐쇄’, ‘N번방 사태’ 이후에도 변화하지 않은 사회가 ‘미래 세대’라고 하는 아동·청소년을 범죄자로 만들고, 옆 사람과 친구, 지인, 동료, 가족까지 믿을 수 없는 공포스러운 불신의 시대를 만들고 있다. 딥페이크 성폭력, 디지털 성폭력을 박멸하자는 목소리에 정치가 응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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