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소개] 2023년 생활동반자등록법이 발의된 후, 가족구성권 운동을 해온 사람들은 오히려 이 법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작년 9월, 가족구성권연구소와 민달팽이유니온,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성별이분법에저항하는사람들의모임 여행자,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공동으로 〈연대와 돌봄의 법〉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보고서 읽기) 우리가 할 일은 사회적 소수자들이 살아가는 복잡하고 중층적인 차별과 억압을 드러내고, 동시에 동질적이지 않는 소수자들이 법 제도를 넘나들면서 이미 해나가고 있는 돌봄과 연대를 발견하고 더 많이 발명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번 연재를 통해 우리의 고민과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시설이냐, 지역사회냐’ 이분법적 구획을 넘어선 삶
장애를 가진 몸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아마도 그건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동료로 관계 맺은 경험이 별로 없어서일 것이다. 상습 폭행, 성폭력, 염전노예, 시설 내 인권침해 등 ‘사건’의 피해자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모습이 더 낯익을 수도 있다. 혹은 지하철 이동권 투쟁이나, 활동지원 및 생계비 ‘부정수급’ 등의 이슈를 통해, 제도적 지원을 받는 ‘대상’이면서 과하게 권리를 요구하며 민폐를 끼치는 존재로 연상되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발달장애 학생의 도전행동, 정신장애인의 일탈 행위 등을 문제 삼으며, 지역사회에 갈등과 위험을 야기하는 존재로 간주되기도 한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이토록 얄팍한 원인은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이들에게 피해자 혹은 가해자, 제도의 수혜자 혹은 불온한 존재, 무능과 (장애)극복이라는 극단적인 삶의 선택지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외면하고, ‘정상’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도록 요구한다. 우리는 이를 ‘시설사회’라고 부른다.
시설사회는 장애인의 삶을 ‘거주시설’과 ‘지역사회’라는 이분법적 공간으로 단순하게 구분 짓는다. 보통은 법적/혈연 가족과 함께 사는 것이 거주시설에서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사실 이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머물고 있는 장소도 물론 중요하지만, ‘타인과 어떻게 평등하게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는지’ 역시 중요함에도 그에 관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또 탈시설 ‘과정’과 이후 지역사회에서 적응해야 하는 과제 및 인간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 소개할 A와 B는 각각 거주시설 거주인과 지역사회 재가장애인으로 살아왔다. 머무는 공간을 기준으로 보면 두 사람이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갈 것이라 예상하겠지만, ‘시설사회’에서 두 사람은 비슷한 결의 고립과 단절을 경험하였다. 그 고립으로부터의 탈출 또한 다수의 예상을 깨고 누군가로부터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거나 제도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았다. A와 B는 거주시설과 지역사회라는 구획된 공간에 갇히지 않고, 끊임없이 관계 맺기와 저항, 의존과 자립과 실패를 넘나들며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다. 조명되지 않았던 이들의 삶의 족적을, 장애인의 다른 삶의 전략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알기를 바라며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승인 받아야 하는 독립? 벗어날 수 없는 가족
A는 발달장애를 가진 남성이다. ‘시설을 나가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외부에 발송한 것이 알려져 전전긍긍하다 무작정 시설을 뛰쳐나왔다. 수십 번 시도하였으나 유일하게 성공한 탈시설의 시작이었다.
A는 8세에 영유아 시설에서 대규모 거주시설로 전원 조치되며 생의 대부분을 시설에서 보냈다. 노동할 수 있는 몸이었기에 청소년 시절부터 벽돌을 나르고, 농사를 짓고, 시설 내 보호작업장이 들어서면서 ‘최저임금 적용제외’ 노동자로 오래 일했다. 성인이 되고 난 후, 시설에서 나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경찰서, 구청, 인권센터 등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가출’로 신고되어 법적 보호자라고 간주되는 시설장에게 인계되었다. (거주시설에서 거주인은 세대주인 원장과 동거하는 개별 세대원의 개념으로, 무연고인 경우 시설장에게 보호자 책임과 권한까지 주어지는 구조다.)
B는 뇌병변 중증장애를 가진 여성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제가족과 거주하였다. 5층 빌라 한 구석 옥탑방이 B의 몇 십 년 삶이 깃든 세상의 전부였다. 많은 경우 60대가 넘는 중증 장애여성은 공교육에서 배제되었던 탓에, 한글 등 문자소통도 어려웠다. 방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몸은 가족 이외에 연결될 수 있는 관계망을 가질 수 없었다.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가족을 꾸릴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는 몸은 가족의 돌봄에 기대어 평생 살 것을 요구 받았다. 옥탑방 아래 길거리에 오가는 사람들, TV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B는 생각했다. 왜 나는 여기에만 머물러야 할까? 나는 이 방을 나갈 수 있을까?
“시설 문은 활짝 열려있어, 왜 나는 나가지 못할까?” “걱정돼, 혼자서 살 수 있을까?” “밖에서 사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2019년 장애여성공감에서 기획 및 제작한 탈시설 자립지원 매뉴얼 〈시설문 너머 펼쳐진 나의 지도, 나의 독립〉에 적힌 이야기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장애인의 독립도 쉽지 않다. 노동시장 접근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독립의 유일한 문이다. 중증장애를 가진 장애인에 한해, 30세가 넘으면 ‘가구’가 아닌 ‘개인’ 단위로 수급비를 신청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거주하는 집 계약서 및 부양의무자의 금융재산조회 동의서 등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가족의 동의와 조력이 필수적이다.
이미 기초생활제도의 ‘가구 수급’으로 묶인 경우라면, 중증장애인은 근로능력을 입증할 필요가 없는 ‘부양가족’ 이 된다. 부양가족 구성을 통해 수급을 유지하는 가구라면, 장애인의 독립을 허가할 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가족의 승인이 없다면 장애인의 독립은 실현될 수 없다. 이와 같은 제도적 조건 속에서 A와 B는 오랜 기간 보호자의 승인을 받지 못한 채, 각각 시설과 집에서 살아야 했다.
자립을 지원하기보다 ‘보호자’부터 찾는 사회복지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장애연금 및 수당, 지원주택, 자립생활주택, 탈시설장애인 자립정착금, 기초생활보장 제도까지 당사자의 자립을 지원한다는 사회복지는 ‘가족’을 전제로 구성돼 있다. 가족의 돌봄 가능성과 가구의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장애인활동지원 바우처 시간과 본인 부담금이 조정된다. 주거, 의료, 교육, 생계비를 지원하는 기초생활제도 또한 가구의 소득 및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각 영역별 부양의무자 기준은 상이함)을 기준으로 수급 여부가 결정된다. 또 수급권 여부는 연이어 장애연금 및 수당, 지원주택, 장애인 자립대출 등의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렇게 보호자의 돌봄과 부양능력을 기본값으로 삼는 사회복지 제도는 가족이 없는 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다. 무연고자, 기초생활제도 안에 들어간 장애인은 개별 능력에 따라 성년/공공후견제도 피성년후견인이 되거나, 사례관리 대상으로 남는다. 의사결정 능력이 희박하다고 평가되는 이는 지자체장의 권한으로 거주시설 입소를 제안 받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마지막까지 당사자의 독립을 지원하기보다, 보호자를 찾고 연계하여 돌봄과 보호의 책임을 개별집단에게 부여한다.
혼자 밥을 해 먹을 수 없어서, 돈을 벌 수 없어서,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킬 수 없어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장애인의 독립은 그 가능성을 의심받는다. 그렇기에 자립역량심사를 통해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을 심사하고, 보호자인 가족 및 시설의 테두리 안에서 삶을 유지하게 강권한다. 그 편이 더욱 안전할 것이라 안일하게 이야기하지만, 실상은 ‘능력’ 위주의 심사와 ‘가족의 돌봄’을 강제하는 제도가 시설 안팎에서 장애인의 삶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나의 오늘과 내일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권리
A와 B 두 사람은 탈출을 기획하고 저항하여 독립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나를 보호한다고 말하는 높은 담이었던 시설과 가족 안에서의 삶과, 지금 자신의 삶을 분리하며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고 납작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독립의 의미를 기쁨과 행복만으로 설명하지 않고, 독립 이전의 삶을 불행으로 점철된 시간으로 기억하지도 않는다.
함께 살았던 사람들과의 일상들, 그립고 짜증나고 즐겁고 화가 났던 순간들을 떠올린다. 떡국을 나눠 먹던 기억과 체크카드를 처음 만들었던 순간, 한글을 가르쳐 주던 동생과의 한 장면 장면을 거쳐온 삶을 잊지 않는다. 애증의 시간들 속에서 나의 선택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기대 받지 못했던 삶과, 늘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고 기다려야 했던 시간들에 대해 다시 질문한다. 왜 그때 나는 나의 오늘과 내일을 선택할 수 없었는가?
독립한 이후의 삶은 뭐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러나 몸은 기억한다. 한글을 사용하지 못한 자신을 대신해서 “나가고 싶다”고 적어주었던 같은 방 친구의 도움, 구어로도 필담으로도 전달되지 않았던 의사를 끈질기게 말했던 나의 몸, 경찰에 신고할 자료를 모으고 의사를 확인하는 1년여의 시간을 함께한 활동지원사의 조력. 이 모든 관계와 시간을 함께 만들었던 과정이 쌓여 지금 내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긍심이자 원동력이 되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 있는 사회이다.
독립 이후의 장애인을 지원하는 제도는 한시적이고, 단편적이다. 24시간 지원이 불가능한 활동지원시간, 또다시 일대일 관계에 기댈 수밖에 없는 공적 돌봄 체계, 닫혀 있는 노동시장의 현실이 사회적 관계의 확장을 어렵게 만든다. 취약계층으로 ‘수급권자’ 혹은 사례관리자로 ‘사회복지 대상자’로만 남겨지길 요구 받을 때, A와 B의 삶은 또다시 보호자 혹은 제도의 승인 여부에 따라 자원을 배분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사회적으로 조명되지도 인정받지도 못하지만, 두 사람은 지금도 저항과 분투와 연대의 시간을 기억하며 스스로의 독립을 울퉁불퉁 만들어나가고 있다.
[필자 소개] 유진아: 소수자를 배제하는 기준과 제도에 저항하며, 다양성이 인정되고 실현되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다.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 해결을 지원하고 연대하며, 사회와 제도의 문제를 장애여성 동료들과 찾아가고 있다. 이 과정이 시설화된 공간과 관계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며 동료들과 다른 삶의 전략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라 믿고 있다. 어린이와 동거하며 살아가는 일상의 경험을 장애여성운동과 연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기사 좋아요 16
<저작권자 ⓒ 일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
소수자 시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