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간 관계가 효인가

솔직하게 드러낸 관계 이야기

문이정민 | 기사입력 2003/05/01 [01:38]

부모 자식 간 관계가 효인가

솔직하게 드러낸 관계 이야기

문이정민 | 입력 : 2003/05/01 [01:38]
엄마에겐 효녀, 밖에서는 불효녀- 이모씨(31)

“엄마 말도 잘 들어주고, 마음을 잘 알아주고. 무엇보다 엄마를 좋아하니까 엄마는 나한테 효녀라고 하세요. 그런데 친척들이 보기에는 내가 집 나와 살고 서른 넘도록 직장도 버젓이 없고
 결혼도 안하고 있으니 천하의 불효 자식으로 보이는 거에요.”

정작 자신의 부모한테는 더없이 좋은 딸인 이모씨가 친척들한테 늘 질타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외부적으로 보면 “용돈도 못 드리고 집 나가 사는” 딸을 둔 부모가 좋아 보일 리 없다.

“정말 열 받는 건 친척들이 우리 부모한테 불쌍하다고 할 때에요. 딸인데 예쁘게 꾸미고도 안 다니지, 대학 때는 운동하지, 졸업 하고는 결혼도 안하고 변변한 직장 없이 나가 살지, 친척들 보기에는 그런 딸 둔 우리 엄마가 참 한심하고 불쌍해 보이는 거죠.”

그러나 정작 효자, 효녀 소리 듣는 사촌들을
 보면 이씨와 부모님과의 관계보다 못하다. 그들에게 ‘효’란 일종의 부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이야기 들어보면 부모님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하는 거에요. 모시고 살 일도 부담이고 재정적인 것도 그렇고. 결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도 크고요. 부모님이 좋아할만한 남자 데리고 와야 한다, 좋은 며느리 데리고 와야 한다 등등 마음이 무거운 거죠.”

이씨는 2년 전 독립을 선언하고 혼자 살고 있다. 당시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고 결정을 존중해 줬다. 그러나 친척들은 “그 집에 무슨 문제 있나” 하는 의혹의 시선을 감추지 않으며 이씨를 “막된 애” 취급했다.

“그런 건 ‘부모 생각 안 하는 거다’ 이거죠. 내가 이기적이라는 거에요. 정작 부모님들과 나와의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자꾸 그러니까 부모님들도 그런 시선으로부터 마냥 자유롭지는 못한 거 같아요.”

그러나 그는 외부에서 말하는 도식적인 ‘효’의 조건보다 부모님과의 실제적인 관계, 친밀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씨는 갱년기인 엄마가 많이 우울해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느끼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는 효도 관광이니 번잡스런 잔치 대신 엄마를 진심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대화하면서 끈질긴 지지를 보냈다. 엄마의 든든한 백이 되어 준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엄마와 내 관계는 돈독한걸요. 그러면 된 거죠. 만약 형식적으로 부모가 내게 해줘야 하는 거 내가 부모한테 해야 하는 것, 이런 게 있었다면 못 견뎠을 것 같아요. 모든 관계가 그렇듯 서로 마음이 통해야 되는 것이고 친밀감이 있어야 되는 것인데 그게 없는데 ‘효’ 라는 거 들이밀어 봐야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죠.”

이 사회는 부모와 자식 관계를 ‘효’로 포장하지만 실제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효를 강조하는 우리나라에서 노인학대나 버려지는 부모들이 그렇게 많은 건 강요된 ‘효’가 허울이라는 산 증거라고 생각해요.”

효, 실제 관계에 역효과- 박모씨(34세)

어릴 적부터 부모님들의 사랑과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자라온 박모씨. 부모님 말 한번 거스르지 않고 살아왔지만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리 원만한 것은 아니다.

“제가 장녀거든요. 어릴 적부터 응당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어요. 공부도 기대만큼 해야 했고 직업도 부모님을 안 거스르는 범위 내에서 선택해야 했고 나이가 차니까 결혼도 해야 했고. 그게 다 ‘부모님 얼굴 만드는 거다’ 하시니까.”
 


그에게는 부모님의 기대가 늘 부담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이 실망할까봐 솔직하게 마음 열고 말해 본적이 없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는 거에요. 나만 바라보는데 어쩌겠어요. 말도 못하겠고. 의무감, 도리가 ‘효’가 돼 버리니 귀찮고 답답해지고.”

그는 3년 전에 결혼했다. 결혼하고 나니 훨씬 더 도식적인 절차들이 생겨났다. 남편과 함께 생일이나 잔치 때 찾아 뵙고, 용돈 드리고, 가족 모임 주최하고.

“결혼을 하면 더 형식적이 되는 것 같아요. 으레 해야 되는 일들이 딱 잡히니까.”

부모님에게 터놓고 이야기 한번 못해본 그는 결국 부모님과 좁히기 힘든 거리가 생겨 버렸다. 그 탓에 아직도 부모님과의 친밀한 대화가 어색하고 힘들다.

“집에 신랑이랑 가면 데면데면하고 좀 어색하기도 하고, 그래서 말도 별로 없고 하니까 엄마가 서운해 하시더라고요. “돈이나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다” 하시면서. 그런데 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관계가 너무 굳어버린 것 같아서 되돌이키기 힘들 것도 같고.”

그는 서운해하는 부모님을 보면서 자신이 지금껏 믿고 따라온 ‘효’라는 것이 부모님과의 실제 관계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 것은 아닌가 회의가 든다고. 괴리감만 깊어진 관계를 새삼 바꿔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정말 친밀하면, 서로 앙금이 없다면 거창한 이벤트나 거래 같은 게 필요 없는 거 아닌가요. 지금 이 사회의 ‘효’는 친밀함의 개념이 아니라 형식적인 개념인 것 같아요. '누구 집 자식이 어디 여행 보내줬더라, 신랑이랑 매일 온다더라' 식으로 ‘효’에 대해 말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나도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실제로 튼실하지 못한 것 같아요.”

자식이 행복하자면 부모가 우니 - 유모씨(33)

“왠만한 친구보다는 엄마가 훨씬 더 좋은 친구일 수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엄마에게 많이 잘하려고 하고 있어요. 이게 겉으로 보면 '효'인가요?”

결혼해 3개월 된 딸을 두고 있는 가정주부인 유씨는 “맹목적으로 부모를 좋아하는 시기에서 치명적으로 어긋나는 시기도 거쳐” 이제 엄마와 친구같이 편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과거를 돌이켜 보면 아직도 가슴이 아프다.

“결혼이란 건 진짜 하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부모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결혼이다’라는 깨달음을 얻은 순간 그 선택이 나의 행복을 거스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결혼을 결심했어요. 다행히 남편을 그 즈음에 만나서 이 남자라면 같이 살고 싶겠다, 잘됐다 하면서 결혼하자고 했지요. 하지만 부모만 내 마음을 이해해 주었더라면 난 정말 지금과는 많이 다르게 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가슴이 아파요.”

그는 '효'라는 게 부모가 좋아하는 일을 해드리는 것이 정답일지 모르지만 “형식과 제도로 꽉 찬 이 사회에서는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식이 행복하자면 부모가 우는 일이 세고 셌다”며 답답함을 호소한다. 그는 “모든 부모가 자식이 행복하길 바라지만 부모가 그 ‘행복의 조건’이 정말 자식을 행복하게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고 반문한다.

“효라는 게 부모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넘어서고 있는 제도니까 조건도 오백 팔십 가지쯤 되는 거 같아요. 그 중에 하나가 자식의 결혼도 있는 것이고 그로부터 나도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죠.”

시간이 지나 지금은 엄마와 친구처럼 잘 지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싸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자식간에 “싸운다”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모든 관계가 그렇듯 부모 자식관계도 갈등과 화해, 실제적인 이해와 애증으로 얽혀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서로 ‘다른’ 개체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의 개인적인 생활, 생각을 알거나,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죠. 내가 담배 피우는 것도 모르고, 내가 섹스를 아주 좋아하는 것도 모르고, 내가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는지도, 어떤 종류의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지도 잘 모르니까요. 서로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고 그래서 오해도 많고 잘 싸워요.”

갈등의 주요 원인은 역시 가치관 차이인 부분이 많다.


“엄마랑 잘 놀다가도 저녁시간이 가까워오면, “빨리 가서 남편 오기 전에 저녁밥 해라” 그러거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내가 커피 마실래?” 하는데“설거지 해줄게” 하세요. 그러면 화가 나요. 나는 엄마가 순하고 착한 게 사실 마음에 안 들어요. 아빠에게 순종하듯 하는 부부관계도 마음에 안 들고. 그런 게 세상일이라는 듯이 나에게도 강요하니까. 그래도 지금은 한껏 싸워버리고 나서 반성하고 그러는 거죠.”

지금은 맹목적으로 부모의 의견을 따르기 것보다 싸우고 난 후 감정을 풀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반성한다. 본인도 ‘엄마’가 된 지금은 느끼는 공감대도 많고 자신의 엄마를 보면서 위로 받는 일도 많다고.

“언제나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고, 사랑해 주고 있다는 믿음이 서로를 찾게 하는 것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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