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독립정신의 의미를 묻는다

광복회의 ‘위안부’ 박물관 백지화 요구에 대해

박희정 | 기사입력 2007/06/07 [21:01]

이 시대, 독립정신의 의미를 묻는다

광복회의 ‘위안부’ 박물관 백지화 요구에 대해

박희정 | 입력 : 2007/06/07 [21:01]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추진 중인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설립이 진행에 큰 난항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독립유공자와 유가족들의 모임인 광복회 측에서 박물관이 서울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설립되는 것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광복회 측은 ‘독립운동가’와 피해자인 ‘위안부’는 다르다는 점을 들어, 독립공원 내에 ‘위안부’ 박물관 설립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위안부’ 박물관이 들어설 경우 독립운동 성지의 순수성을 훼손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독립운동 성지의 순수성을 훼손한다?

강주혜 정대협 사무처장에 따르면, 박물관 설립 추진 초기부터 광복회 측과 계속 마찰을 빚어왔다고 한다. 조용히 합의점을 모색하려고 했지만, 광복회 측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며 서울시장에게 백지화 요구를 하는 상황까지 왔다. 강 사무처장은 광복회 측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기저에 “‘위안부’ 피해자를 곱지 않게 보는 가부장적인 사고가 깔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던졌다.

광복회 측의 속사정이 어떠하든 독립공원 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 백지화를 요구하며 광복회 측이 내세우는 이유는 여러 면에서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

우선 ‘독립운동가’와 ‘피해자’를 구분하여 독립공원 내에 독립운동가만을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 그렇다. 일본군 ‘위안부’는 징용피해자 등과 함께 최전선에 끌려가 가장 악랄한 피해를 입은 이들이다. 식민지의 국민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의지와 무관하게 폭력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목숨 걸고 싸웠는가, 싸우지 않았는가’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독립운동은 식민지 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고통 받는 민중을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자 함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바로 그 민중이고, 독립운동가들 자신도 식민지 시대의 아픔을 함께 가진 민중이었다.

그렇기에 독립운동의 성지에 ‘위안부’ 박물관이 들어설 수 없다는 광복회 측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피해상황 및 운동을 기록하고 전시하여 다음 세대에게 역사와 평화의 가치를 알리고 인권교육의 장을 제공하려는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의 설립 취지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박물관이 들어설 수 없다면 과연 독립공원에는 무얼 세워야 하는 걸까?

우리가 할 일은 역사와 평화를 가르치는 것

청산되지 않는 역사 속에서 ‘독립’은 단지 문서상의 주권회복에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역사를 왜곡하며 우경화의 길로 치닫는 일본 정부와 싸우는 수많은 전쟁범죄 피해자들에게 일본의 제국주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행해온 수요시위가 1천회를 넘기고 있다. 명예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와 한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위안부’ 피해자들은 공식적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 싸움에 함께 힘을 실어 주는 것, 다시는 이와 같은 피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정한 독립정신의 계승이 아닌가.

서대문독립공원은 독립정신을 상징하는 중요한 역사적 장소다. 특히 각 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하고 동아시아의 평화가 위협 받는 요즈음, 독립정신의 의미는 새롭게 성찰될 필요가 있다. 침략 행위, 파괴, 폭력에 대해 성찰하고 평화와 공존을 위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곳을 역사와 평화를 배울 수 있는 진정한 성지로 가꾸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단지 숭배를 위한 높은 탑을 쌓는 것이라면, 그 속에서 역사의 현재와 미래, 사람은 어찌되는 것인지를 묻고 싶다.

서대문독립공원은 국가주의나 민족주의를 넘어서 전쟁과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역사와 평화를 가르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광복회는 합리적이지 않은 ‘위안부’ 박물관 백지화 요구를 하루빨리 철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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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6/07 [22:39] 수정 | 삭제
  • 유족들, 자신들이 독립운동을 한 것도 아니면서 조상들 덕을 보려는 것인지..
    일본 정부와 싸우고 있는 할머니들이 엄연히 생존해 계신데, 그 앞에서 할 소리 못할 소리 구분 못하고, 독립공원에 박물관을 세우지 말라니, 그게 할 소리인지. 무례하고 황당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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