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심한 장애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는 블루

이희연 | 기사입력 2008/03/07 [18:04]

나보다 심한 장애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이희연이 만난 장애여성]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는 블루

이희연 | 입력 : 2008/03/07 [18:04]
사람들이 퇴근을 재촉하는 다 늦은 저녁 7시. 그와 만나기 위해 여의도로 갔다. 평소 친한 사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위해 만남을 준비해본 적은 거의 없었다. 조금 먼저 도착한 다음,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갈만한 곳을 돌아봤다.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었고, 너무 시끄럽지 않으면서도, 무엇보다 건물에 들어갈 때 문턱이 없고 엘리베이터가 갖추어진 곳. 사실 이 모든 조건을 제대로 갖춘 곳은 찾아보기 힘들다.
 
 촬영: 이희연
마침 새로 지은 건물에 저녁 식사를 할 만한 곳이 있다. 처음 약속은 광화문으로 잡았었다. 그녀에게도 나처럼 익숙한 곳이리라 생각했지만,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여의도는 어때?”라고 했다.

“왜 여의도야?”
 
“내가 퇴근 후 오려면 지하철이 한 번에 오는 곳이 시간이 덜 걸려. 여기는 갈아탈 필요가 없는데다가 엘리베이터도 있고, 광화문은 밖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는 있는데 승강장 쪽은 리프트잖아. 전동으로 리프트를 타려면 정말 무섭고 시간도 더 걸려. 차라리 다른 곳에 내려 목적지까지 그냥 가는 게 낫지. 그리고 여기는 그래도 새로 지은 건물도 많아서 그나마 갈 곳도 있는 것 같고.”
 
자기가 탄다면 이렇게 만들지 않았을텐데…
 
닉네임이 '블루'인 그녀는 골형성부전증을 지닌 장애여성이다. 뼈가 약한 장애, 특히 다리가 약해 전동휠체어로 이동을 하는 그에게 있어서, 한국의 많은 공공시설은 아직까지 가혹하다.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하는 장애인들이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리프트에 대한 두려움. 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하철에 설치되어 있는 리프트? 그 위험은 안 타본 사람은 몰라. 난 그 밑을 볼 때마다 너무 무서워. 그런데 왜 이걸 만든 사람은 이렇게 만들었을까? 아마 자기가 한 번 타본다면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텐데……” 
 
그의 말처럼 지하철에서나, 길에서나 어디서건 약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인도는 울퉁불퉁해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길 표면의 질감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건널목 신호는 너무 빠르고, 지하철의 승강장 간격도 마찬가지다. 처음 전동을 타고 지하철을 탔을 때는 행여 바퀴가 빠지지 않을까, 타는 도중 문이 닫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고 한다. 남들보다 충격에 민감한 사람이다보니 두려움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장애에 대한 배려가 더욱 없던 어린 시절, 그는 어쩔 수 없이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그가 처음 집을 나온 것은 10대 후반의 일이다. 다른 장애인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다양한 장애를 접하면서 '세상에는 장애의 유형이 참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는 그전까지 ‘나보다 심한 장애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은 그때 없어졌다.
 
“사람들이 내 장애에 대해 잘 모르듯이 나 역시 다른 장애에 대해 몰랐던 거지. 나랑 같은 형태의 장애에도 참 여러 가지 유형이 있는데 말야. 같은 골형성부전증도 상체와 하체에 따라 장애가 나타날 수 있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나처럼 다리가 엄청 약한 사람도 있고 말이야. 그래서 장애라는 것을 알기도 어렵지만, 어떤 장애가 이러한 유형을 띤다고 해서 그 장애란 이런 것이라고 쉽게 단정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 사람마다 다른 경험을 지니니까 말이야.”
 
그의 장애는 그나마 잘 알려졌던 소아마비, 뇌병변 장애와는 달리 의사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의 장애에 대한 정확한 명칭을 안 것은 어느 신문의 기사 때문이었다. 기사에 나온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도 그 장애의 명칭을 정확히 알게 됐다고 한다.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라?


 ▲ 촬영: 이희연
의사들조차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의학사전을 찾아보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장애에 대한 관심이 적다는 반증이 아닐까? 비장애인들도 장애를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사회적 지원들은 장애를 가진 이들을 배려하지 못하고 있다.
 
“내 몸이 휘었잖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뼈가 부러지면 휘어. 그걸 방지하는 것이 기브스인데, 나 같은 경우 뼈가 부러지면 기브스도 잘 못해. 어렸을 때는 정말 너무 자주 부러져서 기브스를 할 수도 없었지만 말이야. 그런데 기브스를 한다고 해도 그 비용을 감당하기 너무 힘들었을 거야. 병원비 정도는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으련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해보니 나 역시 병원비 때문에 걱정한 적이 많았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병원 갈 일이 많은데, 노동의 기회가 적어 수입이 별로 없는 장애여성들에게 있어서 병원비는 무척 부담이 된다. ‘돈 없으면 아프지도 말라’며 개인의 능력 문제로 돌리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그에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공부와 여행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늦은 나이에 공부를 했다. 많은 장애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장애로 인해 하고 싶은 많은 것을 포기하면서 살았다. 공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뼈가 아주 심하게 부러질 때는 작은 충격에도 골절이 됐어. 가벼운 물건을 던지다가도 부러지고. 게다가 일단 걷지를 못하니 학교 다니기엔 어려웠지. 그때는 사람들 인식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았거든. 의무교육은 장애인에겐 포함이 안 되는 건지, 그래서 성인이 된 후 장애인 야학에서 공부를 하고 내친김에 대학도 갔지. 공부하는 게 좋으니까, 정말 잘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졸업을 생각하니 참 여유가 없더라고, 나이가 들어서 졸업을 하니 다른 걸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는 기분이 들더라, 뭔가 정해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어. 그게 장애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지.”
 
장애인은 비장애인들보다 활동 시간이 짧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이야기하는 그녀. '남들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적다'는 생각이 그로 하여금 더욱 바쁘게 움직이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야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활기를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곁에서 봐온 그는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항상 공부하고 싶어 한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한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좋은 귀를 가졌다. 공부를 하면 정말 성공할 것 같은 사람이다.

 
또한 그는 여행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장애를 가진 그녀에게 혼자만의 여행은 아직도 어렵다. 어디 특별히 가고 싶은 데가 있냐고 물으니,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 어디라도 좋다고. 더 나이 들어서 움직이기가 더욱 어려워지기 전에 혼자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자세가 안 좋아서인지 움직이기가 힘들어. 요즘엔 어느 데서라도 편한 자세가 없어. 잘 때도 숨이 차고, 한 자세로 오래 앉아있으면 더욱 힘들어져. 그래서 정말 대단한 각오 없으면 여행은 힘든 것 같아. 게다가 혼자 다니는 여행은 더욱 힘들고, 그만큼의 보장구 같은 게 뒷받침해준다면 모르겠지만.”
 
장애여성들에게 혼자 다니는 여행은 아직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와 나는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나마 여러 보장구 때문에 외출이 쉬워질 수 있었지만, 아직도 힘든 부분이 많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많은 사람들이 전동휠체어를 보고 세상이 참 많이 발전했다고들 한다. 하지만 전동휠체어는 의외로 불편한 점이 많다고 그녀는 이야기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 그건 정말 요원한 일일까?
 
“전동 휠체어 속도가 좀 빨라지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고, 그래서 웬만한 거리는 이걸로 좀 더 움직였으면 좋겠어. 오토바이처럼 말이야. 오토바이는 차도로 다니지만 우리는 인도로 다니잖아 지금 인도는 전동 휠체어가 다니기에 너무 힘들어. 엉덩이도 아프고 말이야. 자전거 길처럼 만들었으면 다니기 조금 편할텐데, 전동뿐 아니라 자전거도 그렇고, 유모차도 그렇고, 아 욕심을 낸다면 차안에도 쉽게 들어가는 전동휠체어도 있으면 좋겠다. 전동도 한계가 많거든. 그리고 좀 엉뚱한 바램이지만 계단도 올라갈 수 있는 휠체어 같은 게 없을까?”
 
그녀가 말하는 보장구가 만들어질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가 좀 더 편하게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올지도 모른다, 그런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길 바래본다. 그녀는 지금도 바쁘게 돌아가는 하루를 마감하며 자연을 꿈꾸고 있을 것 같다.


'골형성부전증'이란: 작은 충격에도 뼈가 잘 부러지는 특성을 지닌다. 대부분의 경우 사춘기 이전까지는 특별한 충격 없이 골절을 경험하는 경우가 많으나, 그 유형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대부분 작은 체형을 가진 경우가 많으며, 뼈의 변형이 흔히 보이게 된다. 다리가 약해 보장구가 필요한 사람이 많으며, 직접 접촉해서 이동에 도움을 줄 때는 좀더 신중함을 기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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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족 2008/03/19 [10:15] 수정 | 삭제
  • 전동휠체어 문제라든가 교육에 관한 솔직하고 예리한 의견이 정말 좋습니다. 이쪽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을 주는 내용입니다. 이런 분과 공부나 여행을 함께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군요. 다시 한번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chewing 2008/03/10 [23:21] 수정 | 삭제
  • 장애에 대해서 배우는 마음으로 기사를 보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하려는 마음을 보태서요.
    처음 듣는 용어들도 있지만, 두번째 들을 때는 조금 다르겠죠?
    배움이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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