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차원의 ‘에너지 정의’원칙 세워야

아시아 에너지와 자원 착취를 방조해선 안돼

이정필 | 기사입력 2009/09/10 [17:24]

지구 차원의 ‘에너지 정의’원칙 세워야

아시아 에너지와 자원 착취를 방조해선 안돼

이정필 | 입력 : 2009/09/10 [17:24]
[일다는 에너지정치센터와 함께 우리나라의 ‘해외에너지 자원개발’ 현황과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고, 우리의 역할을 묻는 ‘정의로운 에너지를 위한 아시아 연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자 이정필님은 에너지정치센터 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최근 몇 년간 석유,가스 분야의 해외 에너지개발에 국내 대기업과 종합상사들이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공기업으로는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에너지기업으로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가 눈에 띈다. 대우인터내셔널, 삼성물산, 현대종합상사, LG상사, SK네트웍스 등의 대기업 종합상사들도 ‘수출대행업체’에서 ‘자원개발회사’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해외자원개발은 “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한 방안으로서, 우리국적의 기업이 자원보유국에 진출해 직접 자원을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에너지경제연구원) 이 개발사업은 고위험-고수익 사업이다. 고도의 자본과 경영.정보 역량이 필요하고, 플랜트, 건설, 수송, 금융보험산업 등 타 산업과 높은 연관투자효과가 나타나 막대한 정치.경제적 파급효과를 지닌다.
 
국민세금으로 해외 에너지개발기업에 ‘특혜’줘
 
▲다국적기업의 버마 가스개발 폐해를 알린 ERI(Earth Right International) 보고서(2007)
한국 역대정권은 에너지 위기라는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가스개발을 공기업과 사기업을 불문하고 정책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지원해왔다. 특히 김대중 정부부터는 에너지기업을 적극 지원.활용하기 시작했고, 자주개발을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노무현 정부는 2016년까지 석유24%, 가스39%로 자주개발율을 설정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탄력받고 있다.

 
‘자주개발’개념은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기준으로 한 광의 개념과, 개발에 성공해 실제 국내에 도입하는 ‘물량’을 기준으로 한 협의 개념이 있는데, 정부는 전자를 택했다. 이러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에너지 자립과 거리가 멀다. 또 국내도입과 무관하게 해외에 판매해 수익을 얻는 것이 주목적이므로, 한국에서 에너지사용을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기업이익을 보장하는데 정부정책과 재정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정부의 재정지원 중 1982년부터 실시된 ‘성공불융자’라는 해외진출기업에 대한 특혜성 제도가 있다. 자원탐사에 실패할 때 융자금은 감면되고, 대신 성공할 때 부별부담금을 징수하게 된다.
 
‘성공불융자’는 석유수입부과금과 유류세 등으로 조성한 ‘에너지 및 자원사업 특별회계’로 지원되는데, 고위험 에너지개발 사업에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국가들은 이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폐지했다. 반면 한국의 주요 진출기업들은 여전히 엄청난 국비(200년부터 성공불융자 감면액 총액은 2억 달러가 넘는다)로 땅 짚고 헤엄치고 있다.
 
개발에 관한 국제규범 준수하지 않는 한국기업
 
한국의 해외 에너지개발 문제점은 국내 공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해외 독재정권과 손잡고, 인권침해를 방조하는 등 문제가 심각하다. 또 자원개발 속성상 대규모 환경파괴가 발생한다. 자원이 풍족해도 정치경제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자원의 저주’ 이면에는 한국과 같은 해외자원개발 국가와 기업, 그리고 자원보유국의 ‘부패연대’가 도사리고 있다.
 
버마의 경우가 단적인 예다. 해외 에너지개발은 독재국가(SPDC, 국가평화개발평의회)의 권력유지 수단인 국가기구를 강화할 필요성과, 해외기업의 이윤지상주의 탐욕이 결합해 극단적인 인권침해로 나타나고 있다.
 
▲ 7월, 에너지정치센터와 미국 하버드법대 국제인권클리닉은 한국기업의 '버마 쉐 프로젝트'에 대해 버마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자, 에너지자원개발 다국적기업들의 해외진출에 대한 국제원칙과 기준이 제정돼 실행되고 있다. ‘안전과 인권에 관한 자발적 원칙’, ‘채굴산업 투명성 이니셔티브’ 등 규범들이 그것이다. 다국적기업들의 기업활동 지속가능성과 지역사회 인권과 환경을 위한 투명성과 책임성 제고를 핵심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기업 전체가 이 협약에 가입한 것도 아니며, 자발적 협약에 불과해 강제성이 결여되어 있다. 그만큼 효과는 미흡하다. 특히 선진국에서의 에너지개발과 개발도상국과 최빈국 에너지개발 행태가 차별적으로 나타난다.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의 버마 쉐 프로젝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ERI와 SGM, 국제민주연대 등 버마 가스개발 프로젝트를 감시한 단체들은 다음과 같은 요구사항을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①환경과 사회영향평가 실시 ②지역사회 등 이해당사자에게 영향평가를 포함한 관련 정보공개 ③이해당사자와의 협의체계구축 및 실질적 운영 ④해당기업 인권과 환경관련 모니터시스템 구축 및 실행 ⑤국제수준의 개발과 인권관련 원칙수용 및 이행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당연한 상식이다. 한국은 OECD 가맹국이자 가이드라인의 서명국으로서, 한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기업이 해외에서 행하는 활동들이 지침서에 부합하도록 권장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각종 실태 보고서와 현지난민과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한국정부가 군사정권이 지배하는 버마에서 천연가스개발 관련하여 한국기업이 책임을 엄수하도록 하는데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식경제부가 담당하는 OECD 국내연락사무소(NCP)는 정보공개, 고용 및 노사관계, 환경 등에 대한 공식적인 이의제기에 대해, 대우인터내셔널과 한국가스공사의 위반사항이 없으며, 따라서 추가조사 및 중재가 불필요하다고 결정했다.(‘슈에 프로젝트 조사타당성 검토’ 2008년 11월)
 
그러나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에서는, ‘환경영향평가를 실지 않았다는 이의제기는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식경제부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지식경제부가 환경영향평가서 자체를 획득해 RM자료를 판단근거로 삼지 않고, 대우인터내셔널이 평가를 실시했고 그 결과 ‘환경에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말만 듣고 결정문을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지난 7월, 에너지정치센터와 미국 하버드법대 국제인권클리닉에서 버마난민들을 인터뷰한 결과를 보아도, 현지주민들은 쉐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는 의미다.
 
모두를 위한 보물을 우리만 위한 것으로 바꿔선 안돼
 
한편, 한국가스공사의 무책임성은 공기업의 직무유기와 태만에 해당한다. 한국가스공사는 ‘단순 지분참여자’라는 핑계로, 버마 현지상황을 대우인터내셔널로부터 유선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만 접하고 있다. 언론에 보도된 버마인권침해와 환경피해 사실에 대해, ‘반정부단체의 국제적인 정치목적상 유포한 근거 없는 사실이라고’ 반복할 뿐이다.
 
세계질서는 북부 선진산업사회와 남부 후진적인 자원지향추출경제 간 에너지와 물질전환체계의 모순과 불평등을 낳고 있다.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천연자원을 수출해 산업화된 국가들이 번영을 유지하고 증대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반면, 정작 자신들의 영토는 자원수출과정이 종료된 후 ‘블랙홀’로 남게 된다.
 
인류의 공동자산이자 지역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사용되어야 할 에너지와 자원이, 일부 대기업의 초과이윤을 축적하는데 쓰이거나, 보다 잘사는 국민들의 지속 불가능한 생산과 소비양식을 위해 소비되는 것이다.
 
‘에너지기후시대’에 지구 차원에서 환경, 사회,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살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그것은 에너지 불평등을 제거하고, 보다 정의로운 에너지개발을 위한 지구 차원에서의 강제력 있는 에너지 정의의 원칙을 세우고 실천하는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한국기업들이 국제규범들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철저히 준수해야 할 것이다. 말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개발이익을 현지 지역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정부도 막대한 세금을 재벌특혜를 위해 제공할 것이 아니라, 에너지 빈곤을 해결하고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데 사용해야 한다.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권과 환경파괴에 관한 이의제기를 받아 처리하는 지식경제부 장관이 다름아닌 해외 에너지개발 프로젝트를 촉진하는 업무를 하고 있어서, 대우인터내셔널이 논쟁적인 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막대한 융자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특단의 정책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시민사회가 아시아의 에너지와 자원을 착취하는데 방조할 것이 아니라, ‘정의로운 아시아 연대’를 위한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모두를 위한 보물을 우리만의 에너지를 위해 그들의 눈물로 바꿔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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