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땅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바이오연료와 인도네시아 오일팜 플랜테이션

이정필 | 기사입력 2009/09/17 [18:46]

자기 땅에서 유령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바이오연료와 인도네시아 오일팜 플랜테이션

이정필 | 입력 : 2009/09/17 [18:46]
[일다는 에너지정치센터와 함께 우리나라의 ‘해외에너지 자원개발’ 현황과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고, 우리의 역할을 묻는 ‘정의로운 에너지를 위한 아시아 연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필자 이정필님은 에너지정치센터 연구실장입니다. –편집자주]
 
기후변화로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 인도네시아
 
▲ 바이오연료가 되는 팜 열매 ©International Land Coalition
2007년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13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참석한 영국의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은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폭풍우에 섬 국가들이 취약하며, 인도네시아가 그 중에서도 가장 심한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반둥공과대학 기상학자인 아르미 수산디 교수 역시 현재와 같은 해수면 상승 속도를 감안하면 2080년 파푸아 섬의 10%, 자바와 수마트라 5% 등 모두 40만㎢의 국토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환경부 장관도 2030년에는 인도네시아 섬 가운데 2천 개가 사라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러한 기후변화와 고유가 그리고 석유정점(peak oil)이 시대적 과제로 등장한 가운데, 재생가능에너지로 각광받고 있는 옥수수, 대두, 팜 등을 원료로 하는 바이오연료는 2007년부터 국제사회에 여러 부작용들이 소개되면서 다소 주춤하고 있는 추세다.
 
그리고 여전히 ‘바이오연료 vs. 식량’은 첨예한 논쟁거리다. 2008년 곡물가 급등과 이에 따른 멕시코, 필리핀, 이집트 등에서 벌어진 식량폭동에 직면하여, 각종 국제기구와 언론매체는 선진국의 바이오연료 개발이 식량위기의 주원인이라고 지목했다.
 
팜오일 제1위 생산국, 한국기업들도 진출 붐
 
바이오연료 원료가 되는 팜, 카사바, 자트로바 재배가 확대된 제3세계 플랜테이션의 ‘비극의 역사’는 장구하다. 19세기 후반에는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생계형 전통적 농업이 세계시장에 엄청난 규모로 편입됐다. 이로 인해 수백만 명의 농민이 굶어 죽었고, 수천만 명의 농민이 고향을 떠났다.
 
향신료, 고무, 차, 커피, 카카오, 사탕수수, 담배 등 식민주의 플랜테이션은 반(半)농민과 농업노동자를 대규모 양산했다. 이들은 농촌과 도시에서 미숙련, 저임금의 노동조건에서 힘겹게 살아왔다. 비공식 경제에 종사하던 절대 다수는 전통적인 재생산 형태가 붕괴되어버리는 아픔을 겪었다.
 
▲ 오일팜 플랜테이션  ©출처- International Land Coalition
인도네시아 역시 식민지배국과 세계시장의 선호에 따라 플랜테이션에 변화를 주면서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산업화 단계에서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자국의 풍부한 산림자원과 광물자원을 수출하는 1차 상품 수출국이었다. 그러나 2004년 이후 석유수출국에서 순수입국으로 위상이 변하면서 동남아 유일의 OPEC 회원국 지위를 상실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정부는 유전(油田)인 팜오일 확대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한 팜오일은 동남아시아 지역이 담당해왔다. 말레이시아는 2006년까지 팜오일 생산의 최대 생산국 자리를 지켰으나, 2007년부터는 인도네시아로 역전됐다. 말레이시아는 바이오디젤 사업에 대한 투자가 과열양상을 띠면서 2006년부터 신규 바이오디젤 공장 허가를 중단했다. 팜오일 식료품 시장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가격을 급상승시킴으로써 산업용 팜오일 공급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인도네시아 정부는 말레이시아의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기보다, 바이오에너지 산업육성 정책을 수립하여 꾸준히 팜오일 확대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도네시아에서 얼마나 많은 열대우림이 플랜테이션 개발로 사라질 것인가. 지금까지 한국 영토만한 열대우림이 벌목과 화재로 사라졌으며, 추가로 한반도만한 면적이 개발될 예정이다.
 
팜 감시단체 Sawit Watch 관계자는 팜오일 확장정책이 실제로 기업이윤만 보장해주고 있으며, 농촌주민들과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고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한 우려는 이미 위험수준을 넘어섰다.
 
원주민 토지 빼앗고, 환경을 훼손하며 자라나는 오일팜
 
SK케미칼과 삼성물산 등 한국기업들도 ‘해외 원료공급기지’를 확보할 목적으로 인도네시아 진출을 꾀하고 있다. 2009년 현황과 장기계획을 보면 정부 추산 총 47.8만 ha로 집계된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해외 플랜테이션도 다수 있는데, 종합하면 수백만 ha가 계획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기업들은 석유,가스 분야의 에너지 개발처럼 성공불융자 형태(자원탐사에 실패할 때 융자금은 감면되고, 성공할 때 부별부담금을 징수한다)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어, 정부 지원이 이뤄질 경우 더욱 공세적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할 것이다.
 
▲ 오일팜 플랜테이션의 여성노동자    ©출처: 지구의 벗
인도네시아 정부의 친기업 정책으로, 소농과 원주민들은 개발과정과 개발이익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 불리하게 적용되는 불공정한 토지할당과 거래 시스템은 정당한 보상은커녕 이들의 생존마저 위태롭게 만든다.

 
농촌주민들과 원주민들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점유하고 생활해오던 산림과 땅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을 상실했다. 지난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농촌주민들과 원주민들은 자신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아 생활하던 토지를 빼앗기고 있다. 이제 자신의 땅이 안전하다고 믿는 농부들은 거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무엇보다도 소농들은 대기업들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와 구조적 제약에 묶여 공정한 가격으로 협상하거나 그들의 뜻대로 토지를 관리하는 능력을 제한 받는다. 이에 더해 가격결정에 배제되면서 더욱 비참해진다.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생태, 문화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플랜테이션 개발과정에서 열대우림이 개간되고 피트랜드(peat land) 파괴로 인해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이 수치를 포함하면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의 온실가스 배출국이다. 그리고 쌀 경작지 마저 오일팜 플랜테이션으로 사용되어, 쌀 가격에 영향을 주고 단작화가 심해지고 있다.
 
플랜테이션에서 다량의 물을 소비하면서 주변지역 수자원이 고갈되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또 플랜테이션에서 방출되는 오염물로 인근지역 토양과 수자원이 오염되고 있다. 대규모 개발은 오랑우탄 멸종위기 등 열대우림에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 종의 다양성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특히 전통적 방식으로 살아가던 현지주민과 원주민들의 공동체문화마저 파괴되고 있다.
 
한국기업들, 해외 바이오연료 개발에 신중해야
 
소농과 원주민 그리고 지역공동체는 지방정부에 항의를 해보고, 지방의회에도 탄원하고, 언론에 호소하고, 시위했지만 대부분 무시되어왔다. 토지소유권을 인정해달라는 주장과 생계유지가 가능하도록 보상해달라는 협상은 기업 측과 정부에 의해 묵살되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인정받던 자기들의 땅에서 유령으로 취급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소농들은 그들의 소득을 보충하기 위해 농장 밖의 일을 한다. 여성들은 작물 운반을 위해 성을 팔도록 내몰리기도 한다. 소농들은 점차 팜 생산에서 천연고무 생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그들은 천연고무가 그들의 문화에 더 적합하고 안정적인 수입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지역공동체와 시민단체들은 몇 가지 대안을 제기한다.
 
첫째, 급진적 입장에서 기업을 전면 철수시키고 현재의 토지를 과거로 원상회복시키자는 주장이다. 둘째, 플랜테이션을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그 혜택을 돌리고, 수명이 끝난 이후에는 주민들의 판단에 맡기자는 의견이다. 셋째, 보다 현실적 입장으로 현재의 할당 상한제를 2ha에서 4ha 이상으로 개선하고, 노동조건과 환경을 개선하자는 주장이다.
 
세 번째 입장은 팜오일 기업들과 WWF, Oxfarm, Sawit Watch 등 환경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한 RSPO(지속가능한 팜오일을 위한 라운드테이블)와 관련된다. RSPO의 기준과 원칙은 팜오일이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허용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강제성이 없고 대부분 기업들이 불참하여 실질적인 효과는 의문시된다.
 
따라서 이제 막 뛰어든 한국기업들 역시 해외 바이오연료 개발에 보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현지 지역사회의 환경, 사회, 경제적 지속가능성을 훼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해관계자들은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규제 틀을 구성해야 할 것이다.
 
※ 에너지정치센터(enerpol.net)는 2008년부터 바이오연료의 허와 실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오일팜(oil palm) 플랜테이션 현지조사를 비롯, 팜 감시단체인 현지 Sawit Watch와 연대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녹색정치 많이 본 기사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