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는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한국사회에서 도처에 널린 ‘빈곤’ 가능성에 주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사연에 귀 기울이며, 국가의 빈곤대책으로 시행된 지 10년째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문제점 및 보완책을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4회에 걸쳐 싣습니다.
필자 재인님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으며, 기초생활수급자들과 만나온 현장경험을 토대로 연재 글을 기고했습니다. –편집자 주 불안한 사회, 도처에 널린 ‘빈곤’ 가능성 ‘빈곤’이라고 했을 때, 당신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폐지 줍는 노인? 구걸하는 사람? 혹은 노숙인? 판자촌이나 비닐하우스집?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하며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인 기초생활수급자들과 직접 만나가면서, 나 역시 ‘빈곤’에 대한 틀에 박힌 이미지를 깨며 보다 확장된 개념을 구성해가고 있다. 최근에 기초생활수급자 주민 한 분이 상담 중에 이렇게 물었다. “저도 그렇지만, 여기에 오는 사람들 어쩌면 그렇게 평범해 보여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정말 궁금하더라고요.” 그 분의 질문에 크게 공감하며, 이렇게 답변했다. “저도 처음엔 막연하게 빈곤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공부하고 사회복지사가 되었어요. 그렇지만 경험 없던 터라, ‘멀쩡한’ 분들을 클라이언트로 만나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선입관이 많이 깨졌죠. 또, 참으로 다양한 사연을 접하게 되면서 ‘빈곤’이란 그리 먼 일이 아니고,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위험’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실제로 사회복지현장에서 만난 기초생활수급자(이하 ‘수급자’)들은 저마다 구구절절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회사가 부도가 나서 간신히 직원들 인건비만 챙겨주고 큰 빚을 지게 된 한 전직 사장은,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급자로 살아가며 실직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회사 임원이었던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자, 정신적으로나 금전적으로 고통 받아오던 아내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채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남편과 사별한 후 자녀 교육비 등으로 재산을 모두 쓰고 수급자가 된 한 여성은, 전업주부로만 살아오다 뒤늦게 생계유지를 위해 부심하고 있다. 또 한 여성은 남편의 지병으로 10년이 넘게 배우자소득 없이 가족의 생계비를 벌고 있다. 하지만 대학생인 자녀가 졸업을 하면 수급권이 소멸돼 생계비를 받지 못하게 되는데, 청년취업이 어려운 시기라 걱정이다. 지금도 말끔하게 양복정장을 입고 다니는, 왕년 대기업 직원이었던 한 남성은 퇴직금으로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큰 실패를 보고 수급자가 됐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한 한부모 여성은 전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채, 지역아동센터에 자녀를 맡기고 어렵사리 가족의 생계비를 벌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부터 술을 즐기다가 사업실패, 혹은 갑작스런 실직으로 알콜중독자가 된 채 실직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은 사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 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가족이 겪은 사건 하나로 인해 빈곤의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현실을 절감했다. 도처에 빈곤의 가능성이 널려있다. 빈곤과 빈곤이 아닌 것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을 남의 문제인 것처럼 타자화하며, 경쟁으로만 치닫고 있는 우리의 현 자화상은 이 불안한 사회를 개혁할 만한 희망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지난 달 29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토론회 <가난한 ‘우리’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빈곤의 타자화가 빈곤한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기 어렵게 만들고, 더 나아가 탈(脫)빈곤을 모색하는 것에도 걸림돌이 된다’고 지적했다. 사회구성원들이 ‘빈곤’에 대해서 막연한 이미지가 아니라 ‘누구나 처할 수 있는 위험’이라고 현실인식을 해나갈 때, 비로소 도처에 널린 빈곤의 가능성을 줄여갈 수 있는 사회적 해법도 보다 빠르게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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