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법, 장애인 성폭력피해자 더 ‘불리’

‘항거불능’ 문구는 사라졌지만 해석 더 엄격해질 우려

김정혜 | 기사입력 2011/10/31 [02:36]

도가니법, 장애인 성폭력피해자 더 ‘불리’

‘항거불능’ 문구는 사라졌지만 해석 더 엄격해질 우려

김정혜 | 입력 : 2011/10/31 [02:36]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 및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문제에 대한 분노 여론이 뜨거워지면서 일명 ‘도가니법’으로 불리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여론을 의식한 듯 재석의원 208명 중 207명의 압도적 찬성으로 신속히 가결된 이번 개정안이 과연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범죄를 효과적으로 처벌하고 규제할 수 있을 것인지 짚어봅니다. 필자 김정혜씨는 장애여성공감 지적장애인 절차참여권 연구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일명 ‘도가니법’이 급작스럽게 국회를 통과했다. 10월 28일, 국회는 그간 상정되어 있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 개정안 9건을 대안 폐기하면서, 주요 내용을 모은 법제사법위원회 대안을 본회의에 부의하여 통과시켰다.
 
이번 개정의 주요 사항은 ‘항거불능’ 요건으로 오랫동안 문제가 되었던 ‘장애인준강간죄’ 조항을 세분화하고, 형량을 높이고, 일부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한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현행 장애인준강간죄는 삭제된 것이나 다름없고, 범죄가 성립되기 위한 요건은 도리어 강화되었다.
 
뜨거운 감자였던 ‘장애인준강간죄’ 판단 기준
 
현행 장애인준강간죄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한 경우에 성립한다. 형량은 형법상의 강간죄와 같이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해당한다. 범죄가 성립되려면 피해자가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어야 하고, 바로 그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조항은 애초에 신체적 장애만을 규정하고 있다가, 1997년 개정시 정신적 장애가 추가되면서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라는 요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형법상 강간죄는 일반적으로 세 단계로 나뉜다. 폭행, 협박으로 부녀를 강간한 때에는 강간죄, 심신미약자를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한 때에는 심신미약자간음죄,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때에는 준강간죄가 적용된다. 준강간죄는 술에 만취해 있거나 잠이 들었거나, 마취로 인해 성적 침해에 방어할 수 없는 등의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조항이다.
 
장애인준강간죄는 형법상 준강간죄와 비슷하지만, 장애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성립요건을 완화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피해자가 장애로 항거불능 상태에 있음을 이용했다면 폭행, 협박 같은 다른 수단이 없어도 범죄가 성립하게 된다. 그래서 판단의 기준은 가해 행위보다는 항거불능이라는 피해자의 상태로 돌아간다.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이란, 어떤 상태일까
 
그렇다면 성폭력에서 ‘장애로 인하여 항거불능인 상태’에 처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일까. 먼저 장애 자체의 정도에 따라, 사리분별이 불가능하여 성적 침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중증 뇌성마비와 같이 신체적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가 해당된다.
 
그런데 문제는 장애 자체는 그 정도로 심하지 않지만, 피해자가 장애로 인해 성적 침해에 대한 저항을 하기가 현저히 곤란해지는 경우이다.
 
장애의 특성과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회적 관계망이 취약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기가 어려우며 본인의 의사를 적절히 표현하는 데 곤란을 겪는 사람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원치 않는 성적 접촉을 거절하는 방법도 모르고 가벼운 위력에서도 빠져 나오지 못할 수 있다. 가해자에게는 먹혀 들지도 않을, ‘싫다’거나 ‘가야 한다’는 정도의 표현이, 피해장애여성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부표현일 수 있다.
 
평소에 피해자가 두려워하던 사람이 ‘가만있어’ 하면서 옷을 벗길 경우, 두려움에 압도될 수 있다.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폭행당하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항을 할 수 없게 되는 지적 장애인도 있을 수 있다. 뇌성마비로 몸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이전에 성폭력을 경험했던 피해자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아예 반항을 포기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고자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장애인에게도 일어날 수 있지만, 장애로 인하여 어려움은 더욱 강화될 수 있다. 바로 이런 경우들이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각 사안에서 법원의 판단은, 그야말로 법원마다 달랐다.
 
법원마다 상반된 결론 내려
 
▲ <도가니>의 모델이 된 인화학교 사건 재판에서 수화로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점 등을 근거로 청각장애 피해아동의 '항거불능'은 인정되지 않았다.  
항거불능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판결들은 피해자의 장애 자체의 ‘정도’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피해자가 평소에 심각한 장애상태에 있지 않았다면 성폭력에 대해서도 저항이 불가능한 상태였을 리가 없으니, 폭행, 협박, 위계, 위력 같은 별도 수단이 없으면 성폭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컨대 평소 혼자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할 수 있고, 버스를 탈 수 있으며,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니고, “교우관계가 원만하고 밝고 명랑하게 생활”하였다는 등의 사실이 피해자의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근거로 인정되곤 했다.
 
피해자의 성경험이나 성에 대한 지식도 판단 기준이 된다. 피해자가 이전에 성폭행을 비롯한 성적 접촉의 경험이 있거나,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거나 임신, 낙태 경험이 있다는 점 등은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었다. ‘성관계의 의미를 이해한다’거나 ‘성적 자기결정능력이 있다’고 해석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성폭행으로 인한 임신으로 낙태한 경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 다른 법원의 판단 기준은 바로 ‘피해자의 저항’이다. 소리를 지르려고 하였지만 피고인이 입을 막아서 실패한 경우, 범행 당시 가해자에게 만지지 말라고 말했고 이후에는 ‘엄마에게 혼날까 봐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사례, 옷을 벗으라는 요구를 일단 거절하였었던 사례에서도 항거불능은 부정되었다. 반복하건대, 항거불능은 ‘부정’되었다.
 
원하지 않은 성적 접촉에 대하여 피해자가 거부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저항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장애인준강간은 성립하지 않았다. 저항이 아예 불가능한 상태라야 ‘항거불능’에 해당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구체적인 상황의 맥락을 고려하여 판결을 내린 경우도 적지는 않다. 대표적 사례인 2007년 대법원 판결은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서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도 ‘항거불능’으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단지 피해자의 장애 정도만이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계, 주변 상황, 가해 행위의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까지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장애 자체와 장애 이외의 정황 요소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성폭력에 대한 저항을 곤란하게 할 수 있음을 반영한 판단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같은 입장에 있는 판결들은 앞서 지적한 판결들과는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 일반학교에 다녔지만 장애를 이유로 학교에서 배려를 받았을 가능성을 고려하거나, 이전에 성경험이 있었다고 해도 성관계의 사회적 의미를 이해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거나, 간단한 위협만으로 손쉽게 저항을 억압한 것이야말로 저항의 현저한 곤란을 입증한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법원의 태도는 일관되어 있지 않다. 결국 가해자로서는, 그리고 피해자로서도 어떤 법원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때문에 장애인준강간죄에서 ‘항거불능’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주장이 대두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개정안이 오히려 가해자에게 유리한 이유
 
그러나 몇 일전 국회는 소위 ‘도가니법’이라 불리는 제3의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항거불능’ 이라는 표현은 이상한 방식으로 ‘삭제’되었다. 새로 통과된 개정 조항은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세분화하여 총 7개의 항을 구성하였다. 강간, 유사성행위, 강제추행, 준강간, 위계・위력을 이용한 간음 및 추행, 그리고 보호・교육시설 종사자의 범죄에 대한 가중 규정이다. 더불어 강간 및 준강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폐지하였다.
 
문제가 되었던 ‘항거불능’이라는 문구는 개정조항에는 없다. 대신 준강간죄를 직접 인용하는 규정이 생겼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형법상의 준강간죄를 범한 사람’을 강간죄와 같이 처벌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항거불능 요건을 삭제한 것이라 할 수도 없고, 성립요건을 완화시켰다고 볼 수는 더더욱 없다.
 
개정조항이 인용하는 형법상 준강간죄를 반영하여 개정조항을 풀어 써보면, ‘장애가 있는 사람에 대하여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한 간음’을 한 경우를 처벌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잠들었거나 만취한 상태를 상정하는 형법상 준강간죄처럼, 심신상실에 준하는 수준의 장애에만 적용될 개연성이 높다.
 
결국 개정 조항은, 기존의 상반된 법원의 태도들 중에서, 장애의 ‘정도’를 기준으로 하는 엄격한 해석을 명시적으로 지지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2007년에 항거불능에 대해 복합적이고 완화된 해석을 시도하였던 대법원 판결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 셈이다.
 
‘고도의 장애’는 아니지만 장애로 인해 구체적 상황에서 성적 침해에 대해 저항이 현저히 곤란하였고, 그래서 가해자로서는 위계・위력이나 폭행・협박이 없이도 성폭행이 가능한 경우라면, 개정법 하에서는 어떠한 조항도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형량이 대폭 오른 것도 반가워할 일만은 아니다. 3년 이상이었던 장애인 강간, 준강간의 법정형은 무기 또는 7년 이상으로 급등했다. 심신미약자간음죄는 5년 이하에서 5년 이상이 되었다. 최고형이 최저형으로 급변한 것이다.
 
극악한 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형량을 올려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하지만, 특정 조항의 형량만 올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형량이 높아질수록 법원은 유죄를 선고하는 데 더 많은 부담을 느낀다. 급등한 형량이 처벌 강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의 장애 상태에 대한 판단을 더욱 엄격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성폭력에 대해 취약한 ‘장애’는 매우 다양하다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인정하는 기준은 그 사회의 장애에 대한 관점과 성폭력에 대한 관점을 동시에 반영한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불신을 전제한 채 장애와 비장애를 분리하고 ‘취약한 장애인’만을 특별히 보호하려는 태도는, 경계에 선 사람들에 대하여 눈을 감는다.
 
반복적이고 장기간에 걸친 폭력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적어도 그 폭력에 있어서 만큼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 이 또한 일종의 장애 상태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부터, 사회적 경험으로부터, 개인의 연령이나 성숙도로부터, 어디서든 ‘장애’는 비롯될 수 있다. 반드시 등급으로써 ‘확인’받는 장애가 아니라, 일상에서 총체적인 곤란을 겪는 장애만이 아니라, 성폭력에 대해 취약한 ‘장애’는 매우 다양하다.
 
피해자에게 ‘고도의 장애’일 것을 요구하는 법은 이들의 피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장애를 과장하도록 하는 법은 피해자에게 온당한 법이 아닐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 나짱 2011/10/31 [08:34] 수정 | 삭제
  • 꼭 필요한 기사내용이네요. 강경처벌위주로 쉽게 덮으려는 이 분위기가 어찌바뀔수 있을까요...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