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서방! 대문에 금줄 내다 걸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화

김담 | 기사입력 2013/07/02 [15:21]

“장서방! 대문에 금줄 내다 걸어”

김담의 연재소설 <소향전> 3화

김담 | 입력 : 2013/07/02 [15:21]

한국의 근현대사를 살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 ‘씨받이’라고 불렸던 대리모 소향의 일대기가 연재됩니다. [편집자주]
 
받을 돈을 손에 쥐면 명절 때 이웃에 우사스럽던 아이들 옷가지라도 사야 되고 소식 없는 서방이라도 며칠 찾아 나서자는 것이 소향어미의 계산이었다. 그런 와중에 난데없이 소향이 중매라니? 소향어미에게는 소향의 존재가 지금으로서는 거둘 입이 아니고 도리어 거들어 주는 손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당장 오늘만 해도 그렇지 수협장이 와서 돈을 주면 그래도 소향 몫으로 어른들 반 몫은 줄 터인데.


서방 없이 다섯 아이 거느리고 사는 소향어미 입장에서는 서방이 대들보라면 소향은 적어도 기둥 하나쯤은 되는 버팀목인데 싶어 도무지 맘이라고는 내키지도 않지만 할 말도 없이 앉아서 수협장을 기다리는 것이 지루한 참이어서 한마디 띄워본 것일 뿐이었다.


-아지매, 국밥이나 묵고 나서 우리 천천히 얘기하제이, 혼사라는 게 인륜지 대산데 서로 간에 다 마차보고 또 견자보고 할 일이제 오데 함부로 장날 짚신 한 켤레 사듯 하노? 내는 보살이라 카는기 아이고 사람 일은 다 천신의 운과 타고난 팔자를 제대로 맞차서 해야 무리가 엄꼬 또 화도 복으로 변하는 기라. 이 아지매는 뭐 하노? 배가 난리구만!- 하면서 미닫이를 열고 무당은 -아직 멀었는교?- 하고 부엌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뚝배기에 어제 남아서 내왔을 성싶은 고깃덩어리가 위로 수북이 보이는 국밥 세 그릇이 사각 소반에 담겨져 들어왔다. 세 여자는 설설 서리는 김을 불어가며 그릇의 밑바닥 긁는 소리까지 내었다.


-아따 내 팔도를 댕기민서 국밥 마이 무 봤지만 오늘 같이 맛있는 건 또 첨이네. 이래노이  아지매는 돈벌제. 인제 난리도 다 끝났고 또 듣자하이 여기 항구를 만든다 카던데 그라모 아지매는 노났네! 인제-


목포에서 여수를 거쳐 부산으로 다니는 정기여객선이 생기고 또 포구를 정비하여 대형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한다는 소문을 여곽주인으로부터 귓전으로 들었던 무당이다.


-그 기 될 긴지 말 낀지. 아! 말이야 왜정시대부터 있었지만 여태 모 해논 게 있나? 백지 말이지-
대꾸하는 대포아지매는 상을 문 쪽으로 밀었지만 일어나서 치울 기미는 없다.


-아지매, 여곽에 내캉 같이 가자, 수협장 올 때꺼정 내가 집식구들 점이나 봐주게. 복채는 없어도 된다. 여는 추버서 더 몬 있것다. 아지매, 얼만교?-


사실 아까부터 소향어미는 복이니 운이니 하는 무당의 설침에 은근히 서방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혹은 살아 있다면 어디쯤 있을 건지 등등 또 자기 팔자는 어떻게 될 건지 무당은 알 것 같기도 했다. 이래서 일없이 공상에 사로잡히면 맘만 사나와진다고 생각하지만 수협장이 올 때까지는 뾰족한 수도 없고 또 오늘은 꼭 돈을 받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왜정 때부터 해오던 여곽은 해방 후에 적산가옥으로 처분되었고 타지 사람이 새 주인이 된  지는 벌써 한 십년이 되었다. 소향어미도 이곳에 단체손님이 들이닥칠 때 부엌에 품 팔러 다닌 적이 있어서 눈에 설지는 않을뿐더러 주인여자가 그런대로 후하게 쳐주는 삯 때문에 부르면 거절하지 않는 곳이다.


부엌 바로 옆방이라 그런지 아침 군불에 익은 구들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두 여자의 한기를 금세 녹여준다. 바닥에 깔린 이불호청이 새삼 깨끗하다고 느끼는 소향어미는 솜이불 속에 손을 넣으며 호의를 담은 말을 건넨다.


-아침꺼정 사시고 내는 복채도 없는데 그래도 봐주실랍니꺼?-
-아지매, 내 거서는 대포아지매가 있는데 우째 자세한 말을 하겠노? 딸아 말이다. 내가 좋은 데 있으이 내 말대로 하몬 아지매 허리 필 일 생길끼다. 여서는 잘해야 뱃놈 사위 보고 과부 맹글기 십상이고 아니면 대처로 뺏기거나 혹은 섬에 가서 평생 물질하고 살낀데······. 내가 용왕제 모실 때 아지매 옆에 있는 딸아 보이 얼굴에 복이 있더라. 여자는 머 있노? 사내 하나 보고 사는데 아지매도 한번 둘러보거래이. 여서 허리 제대로 피고 사는 여편네가 오데 있노?-

 
봐준다는 점은 간데없이 그저 무당 자신이 지나갈 길에 미리 땅 다지기에 급급하다. 중매라고는 해도 말이 중매지 씨받이 중매란 잘못했다간 옥이야 금이야 키운 딸자식을 우찌 보냐며 뺨만 너덧 대 맞을 수도 있는지라 서두를 꺼내기 전에 온갖 넋두리로 혼을 반쯤 빼놓거나 아니면 처량하거나 불쌍한 처지를 더 비참하게 설파하여 무당의 말마디가 동정심에서 유발된 듯 경계심을 풀어헤치게 하는 것이다.


-말해보이소, 오데 있는 누군데에?-
드디어 무당의 장단에 첫 반응을 보이는 소향어미다.


-내 말 듣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거레이. 내가 아지매 얘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마침 내가 지난해 동지달 무렵에 경상도에서 있었던 일이 퍼떡 생각 안나나? 만석꾼인데 아가 없어서 누구든지 아들만 하나 낳아주면 논도 밭도 다 마련해 줄끼라꼬!-


소향어미의 눈을 당돌하게 쳐다보며 하는 무당의 말에 잠시 혼란스런 정신을 가다듬은 소향어미가 이불 속에 넣었던 손을 확 잡아 뺀다.


-뭐라캅니꺼? 지금! 이기 그라몬 혼사가 아이고······. 머꼬, 그 첩이나 씨받이 하라는 겁니꺼? 지금! 내는 무신 중매자리라 캐서 맘에도 없었지만 그저 한번 들어볼라 캤는데 말 같잖은 소릴 하노? 그카지 마이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기 내보고 할 말입니꺼?-


무당의 눈은 여전히 난리치는 소향어미를 위압하듯 응시하며 아무 반응도 안보이지만 곧 일어설 것을 아는 무당은 그 틈새를 주지 않을 양 무겁게 입을 연다.


-아지매. 잘 하면 논도 밭도 생기고 포구에 어물가게라도 낼 장사밑천이 생겨-
아무리 천금이 생긴다 한들 어미의 본능을 떨칠 수 없는 법. 소향어미는 활딱 일어서며 말한다.

-오데 그런 말 같잖은 말을 하노?-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 소향어미다.


무당은 부르지도 잡지도 않는다. 자식 둔 부모는 다 같지 않으랴. 금사초롱에 불 밝히고 머리 풀고 살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이거늘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첩이나 씨받이로 딸자식 쉽게 내놓을 어미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던져진 말은 머릿속에서 돌고 돌 것을 무당은 안다. 많이 돌고 또 돌때까지 가만히 내버려두자는 게 무당의 속셈이다. 인근 섬이나 한 바퀴 돌면 달포는 지날 것이고, 그 때쯤이면 어미는 엄동살이에 신물이 난 형편으로 말미암아 무당의 말을 새기고 또 새길 것이다.

 
힘없이 걸어가는 소향어미의 발걸음이 마냥 흐느적거린다. 섧다. 서방이 없어 서럽고 남의 눈에 짓눌리는 자신의 삶이 서럽고 아이 다섯 내질러놓고 오지 않는 서방이 밉다. 받으려던 돈도 받지 않고 화를 곱씹으며 집으로 가는 소향어미는 온 세상이 밉고 서러워 앞섶이라도 풀어헤쳐 식히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화로 가득 찼다. 사지에 힘을 잃고 헐떡대다가 마침내 집으로 가는 덕호리를 한 모퉁이 남긴 거북바위 위에 털썩 주저앉아 오후의 남해바다가 뿜어내는 희미한 겨울햇살을 하염없이 쳐다본다.


그녀가 살던 남해섬이 출렁이는 파도 위로 멀리 보인다. 보리암 근처의 촌락이라 바다까지는 몆 발걸음 되지 않지만 그녀의 부모는 농사꾼이었다. 하지만 바닷가 어느 가정에서나 있는 비극의 한숨이 그녀 집에도 스며든 것이 그녀가 불과 열 살을 갓 넘긴 해쯤이었다.


겨울철 농한기라 멸치배를 타고 한철 돈벌이를 하러간 아버지가 흔치 않는 겨울바람에 돌아오지 못하자 그때부터 집안의 다섯 식구들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모든 혼신을 쏟기에 바빴고 아비가 남긴 손바닥만 한 농토를 명줄로 살던 어미는 공출을 채우지 못한다고 닦달하던 왜정 면서기하고 눈 맞아 어디론가 가버렸다.


막내였던 그녀는 같은 섬에 살던 고모집에 맡겨지고 위의 형제들은 뭍으로 나가버렸다. 나중에 들은 풍문으로는 제일 큰 오라비는 일본으로 갔다는 말도 있고 작은 언니는 대처에 산다는 말도 들었지만 헤어질 당시 열여섯이었던 큰 언니는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여인이 나이가 꽉 들어 찬 열아홉 어느 해 겨울에 역시 멸치배 타러 온 소향애비를 만났고 삼천포에서 첫아이 소향을 낳은 것이 그 이듬해였다.


앉아서 넋 놓은 눈길을 바다에 던지자니 미웠던 서방이 그리워진다. 줄줄이 다섯 아이를 낳았을 만치 정도 좋았다. 배를 타는 날이면 저녁에는 얻어온 생선으로 밥상을 메웠고 인근 길흉대사에 일꾼으로 불려 다닐 정도로 사람도 좋아 식구들 밥그릇은 채우는 책임 있는 서방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서방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모른다. 알 길도 없다. 혹시 도민증이라도 발급받았는지 수소문해 보았지만 그 역시 헛일이었다. 갓 돌 지난 막내딸을 안고 합천 어느 골짜기 친척나부랭이를 찾아 피난 나섰을 때 눈칫밥 얻어먹는 것이 힘들어 뭔가 해보겠다고 무작정 나선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금 아이들이 다섯이길 망정이지. 생각하는 소향어미는 심지어 피난처에서조차 치근대고 달려들던 서방을 떨쳐내느라 티격태격하던 일이 생각나 희미하게 웃음이 돈다.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들이 걱정이 되지만 앉아있는 바윗돌과 오후 햇살이 너무 평화로워 일어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니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가야 하는 것도 아는 소향어미다. 일어서는 다리가 휘청거리며 신고 있던 고무신이 미끄러 벗겨지고 흰 실로 꿰매놓았던 검정 고무신 코가 터진다. 내일 장날에는 수협장 돈을 받으면 먼저 고무신을 한 켤레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한 손에 코 터진 고무신을 들고 집으로 간다.



문이 열리는 인기척에 고개 돌릴 힘도 없는 소향이 실눈을 뜬다. 아마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작은아지매는 포대기에 말린 아이를 내려놓으며 숟가락도 뜨지 않은 채 고스란히 식어있는 국과 밥을 보며
-우짜꼬! 하나도 안 문네. 일나거라. 무야 된데이. 얼라 젖 좀 미기라. 우찌 울어싸튼지. 얼라가 장사다 장사! 내 퍼떡 국 좀 데펴 오꾸마. 참! 그카고 아 이름이 한수라 카더라. 우리 아 아들 이름이 광수, 재수 아이가. 수자가 돌림자라고 한수라 미리 지어나따카데 영감님이······-


주절거리는 소리를 듣는 동안 소향은 포대기 속의 아이를 곱게 풀어 가슴 앞으로 당기자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젖내를 맡았는지 아직 가누지 못하는 고개를 대신해 입술을 옴짝거리며 칭얼거린다. 소향이 불어있는 가슴을 아기 입에 대자 오물거리며 볼짝을 들이고 내며 젖을 빤다. 쏴~ 하고 젖이 돌아나가는 느낌 속에서 소향의 눈은 다시 감긴다.


한수. 내가 낳은 애기의 이름. 이것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낳아주기로 했고 이제 낳았다. 원하던 아들을 낳아주었다. 이제는? 동생들과 엄마가 있는 삼천포로 약속했던 나머지 돈을 받아 가면 될 것이다. 적어도 그것이 어제까지 소향의 마음속에 굳어있던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소향의 마음은 어제까지 참아가며 피했던 큰아지매의 그 냉기서린 눈길에 대한 옹심보다 갑자기 새로 스며드는 원인 모를 복잡한 마음에 혼란스럽다. 가면 되지! 빨리 일어나 삼천포로 가자! 가서 그 돈으로 엄마하고 무슨 장사라도 하면 까짓 못 살 것도 없다. 엄마가 숯불에 구워주던 고린내 솔솔 나는 말린 곰치도 오독오독 먹고 손가락 굵기만한 멸치를 석쇠에 올려 통째로 입에 넣을 것이고 퍼렇고 야들거리는 초장에 버무린 미역을 밥 위에 척척 걸쳐먹으리라.


그러데 지금 통 입맛이 나질 않는다. 그저 억지로 생각만 할뿐이다.
뱃속에 아이를 담고 있었던 지난 열 달 동안 하루가 멀다 하고 먹으라는 그 시커먼 사발약을 먹을 때마다 속으로 소향은 다짐을 했는데. 뱃속의 아이만 콱 빼주면 냅다 삼천포로 달려가서 갯벌의 퀴퀴한 냄새를 맡고 끼륵 거리는 갈매기소리를 듣고 먹고 싶은 그 모든 것을 실컷 먹으리라고. 그러면 다시는 큰아지매 년의 내리깔리는 음성을 듣지 않아도 되고 얼음장 같은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소향이 지금 한수를 안고 젖을 먹이면서 어제까지 먹었던 그 독한 마음이 오늘 갑자기 어디로 갔는지 통 영문을 모르겠다. 어제까지는 내일이 오기만을 기다렸는데 막상 오늘이 오고 나니 갑자기 내일이 막연해지고 두려워지는 것이다.


열리는 문과 함께 한기를 몰고 들어오는 작은아지매는 국사발을 상에 놓으며
-야야, 어서 일나거라. 국 식기 전에 무야 된다-


작은아지매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앉은 소향이 이제야 목도 타고 허기가 지는 걸 느낀다. 뿌연 미역국이 문종이 한 장으로 막음한 방 안의 찬 공기 속에서 모락모락 김을 올린다. 보리 한 톨 없는 흰 쌀밥이다. 김장김치의 잘 익은 시큼한 냄새도 갑자기 식욕을 당긴다. 소향은 입으로 불어가면서 국을 한 숟가락 떠 넣으며 아직도 벌건 얼굴을 씰룩거리는 한수를 한 번씩 본다.


-작은아지매, 신덕에서 온다는 유모는 언제 옵니꺼?-
-그기야, 니가 삼칠일 지나고 나면 온다카더라. 니는 그저 마이 묵고 기운 차리야 된데이. 그라고 하기 에룹겠지만 니는 아한테 정 주지 말거래이. 형님이 카더라. 밤에는 안방에서 재운다고. 그기 될란가 모리지만. 아가 여산 울어싸야지. 밤중에도 몆 번은 젖 찾고 울어쌀낀데-
목으로 넘어가던 미역국이 왈칵 치솟는다.


애기만 콱 빼주면 그 길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삼천포로 날라갈 거라던······. 오다마 사탕 사서 동생들 주리라던······. 솔밭을 걷고 거북바위를 지나 포구에 엄마 따라 일 나갈 거라던 생각들이 온데간데없다. 그저 막연해지고 두렵다. 숟가락을 떨어뜨리고 소향은 앞으로 꼬꾸라진다.


-나도 어린 기 고생했다, 소향아. 인제 다 훌훌 털고 기운 채리가 너그 집으로 가래이. 인연이 됐으이 인연이지만 이 기이 오데 얼굴에 함박꽃 필 인연이나? 평생을 가심에 대못 박아놓고 살낀데-
작은아지매는 배불러 새근거리는 애기를 다독거리며 혀를 찬다.


-몸조리 잘해야 된데이, 내가 장서방한테 단데이 말해 놨다. 군불 잘 넣라고. 그래도 내가 여서 살아봐서 안다. 이방이 구들이 잘 나져서 불이 잘 드니라. 요강 들라놔쓰이 밖에 찬바람 씨지 말고.. 니는 쉬거라. 내 형님한테 아 델따 줄란다. 사람이 우찌 그리 얼음짱 같노-


부시럭대며 애기를 안고 방을 나서는 작은아지매의 움직임을 알면서도 소향은 이불에 얼굴을 묻고 울기만 한다.

 
밖에서 장서방이 부엌에 땔나무 들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큰아지매의 목소리도 들린다.
-장서방 대문에 금줄 내다 걸어-


아무 대답이 없다. 장서방은 안방 큰아지매를 부르는 법이 없다. 대답하는 일도 드물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나이 어린 여자에게 부를 마땅한 말이 없었던 게 이유인상 싶고 또 변하는 시대 따라 더 이상 반가가 대우받는 사회는 아닌지라 용건이 있으면 대명칭 없이 말을 하고 시키는 일이 있으면 대답 없이 그저 일을 하는 게 장서방의 태도다.


처음 큰아지매가 시집왔을 때만 해도 당시에 있던 나이 많던 머슴은 젊은 새댁보고 아씨라고 불렀다고 한다. 심지어 작은아지매가 혼사를 치루고 지금 소향이 누워있는 아래채에 신방을 차렸을 때도 작은 아씨라고 불렀다고 했다.


벌써 한 20년 전 얘기다. 작은 아지매가 분가를 하여 광수 재수가 열 살, 일곱 살이 돼서야 바로 담 넘어 옆집으로 간 것은 불과 이년도 채 안 되는 소향이 이집에 온 뒤였고 집에 있던 머슴이 인근 주물공장으로 간 뒤로 다시 들인 머슴이 장서방이라 했다.


말수가 적은 장서방은 소향이 아버지 또래는 됐을 성싶은 마흔 중반이다. 어디서 무얼 했는지 아무도 모르고 가끔씩 광수아버지가 물어봐도 피식 웃기만하고 답을 하지 않았다. 일하는 행태로 봐서 농군으로 뼈가 굵은 것은 아니라고 그래도 부지런하고 말수도 적고 무엇보다 술을 입에 대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작은아지매는 칭찬했다. 그 이유는 신랑인 광수아버지가 말술을 사양 않기에 큰소리가 자주 담 너머로 들리는 것을 소향이 들어서 알기 때문이다.

 
문밖의 아궁이에 불 지피는 소리가 들린다. 작은 아지매가 장서방에게 불을 넉넉히 넣으라한 모양이다. 큰 가마가 걸린 아래채 아궁이는 양 고래에 불을 넣어서 마구에 달린 장서방 방과 위의 소향이 묵는 방을 같이 달구는 것이다.


소향이 들은 얘기로는 작은아지매가 시집온 뒤로 이 방에서 십년을 살면서 자신은 마치 부엌데기 노릇하고 광수아버지는 상머슴 노릇하면서 살았는데 그렇게 해달라는 분가도 안 해주고 재산도 나누어 주지 않으니 옴짝달싹할 수가 없는 처지였는데, 때 마침 소향이 오게 되어 방을 내어주게 되는 참에 담 너머 집으로 분가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재산이라고는 땅 한쪽 나누어 주지 않으니 두 아이 키우면서 여전히 안채 눈치 보면서 사니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닌 눈치다.


-소향아-
굵은 장서방 목소리다. 불을 때는가 싶었는데 안방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소향을 부른다.


-예 아저씨-
대답 소리와 동시에 문이 한뼘 정도 열리고 장서방이 손을 들이밀어 빨갛게 곱게 익은 홍시 두 개를 문 앞에 들이며 한마디 더 보탠다. 항상 잠겨있는 안채의 광에만 있는 홍시다.


-너무 차갑다. 좀 이따 먹으레이-
얼굴도 들이밀지 않고 얼른 문을 닫는 장서방이다. 찬바람 들어갈 것을 염려하는 장서방은 이집에서 유일하게 소향을 살갑게 대해주는 사람이다. 살갑게 대해주기에는 너무 무뚝뚝하기도 하지만 이 집에 온 지난 이년 가까이 말 한마디라도 정 담고 하는 사람이 장서방이었다. 샘이 멀어 장서방이 물지게로 날라야 하는데 대갓집 일을 혼자 하는 장서방이 미처 짬이라도 없는 날에는 소향이 영락없이 머리에 옹기를 이고 물을 길어오곤 하는데 한수를 가지기 전, 그러니까 이 집에 온 지 불과 서너 달쯤 지났을 가을이었다. 소향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돌부리에 걸려 나무둥치 같이 앞으로 넘어지는 바람에 이마에 피가 나고 밤톨만한 혹을 달고 다니는 것을 장서방이 본 후로는 아무리 바쁘고 심지어 늦은 밤이라도 부엌에 묻어놓은 사람 키만한 물장독을 열어보고 물을 채워놓는다든지 소향이 무거운 것을 이거나 들 때는 안채의 눈을 피해가면서 뺏어 거들어주곤 했다.


고맙다는 말도 채 하지 못한 소향은 감 홍시를 집어서 윗목에 놓인 바느질 그릇 속에 담아놓는다. 작은아지매는 봐도 상관없지만 혹시라도 유일하게 안채광 쇳대를 가지고 있는 큰아지매가 와서 눈에라도 띄는 날에는 괜히 장서방만 곤란하게 할 것을 염려해서다.


열쇠도 없이 안채에 있는 광의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이 장서방이다. 작은아지매하고 소향만 아는 비밀인데 가끔씩 영감 내외가 집이라도 비우는 날에는 작은아지매는 장서방을 졸라 돈 될 만한 깨나 콩 팥 등등을 얻어내고 그걸 함창 장날 내다 팔아서 돈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런 날에는 아지매는 소향을 위해 뭔가 장에서 사오는 걸 알기에 기대되는 날이기도 했다. 긴 하루가 가고 있었다. 후련할 것도 없지만 후련해지리라 믿었는데 오히려 마음만 천근같이 무거워지는 것을 이기지 못하는 소향이 도로 누우며 옆의 한수가 놓였던 빈 자리를 손으로 쓰다듬는다.

 
안방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큰아지매 인기척이 들리고 곧이어 방문이 열리며 큰아지매가 들어선다.
-아가 배가 고픈 모양이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여자다. 표정도 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는 늘 빳빳하게 세워 항상 사람을 압도하는 태도다. 그것이 미워 작은아지매는 소향의 편이 되었고 그것이 눈꼴 사나워서 장서방도 소향이 편이 된 성싶다.


소향도 아무 말 없이 내려놓는 한수를 방바닥에 닿기도 전에 얼른 받아 안는다.
아래채 방에 여간해서 발걸음을 하지 않는 큰아지매가 한수를 손수 안고 온 것이다. 아마 저녁 준비에 바쁜 동서를 부르기가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앉지도 않고 선 채로 여인은 내려보며 한마디 한다.


-젖 미기고 니가 델꼬 있다가 자기 전에 안으로 델꼬 오거래이-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여인은 문고리를 잡은 채 봉당으로 내려서서 문을 닫는다.


소향은 아직도 빨갛고 푸릇하게 산고에 시달린 얼굴이 역력한 한수를 양손으로 받쳐 들고 물끄러미 내려 본다. 누비이불 속의 한수는 꼭 쥐어진 손과 발을 꼬물거리며 움직인다.


소향은 가만히 자기 얼굴을 한수의 볼에 대보며 눈을 감는다. 냄새가 난다. 칭얼거리는 소리도 들린다. 소향의 뛰는 심장소리도 들린다. 그리고 갑자기 앵~ 하는 울음소리도 들린다. 눈을 뜨고 고개를 들어 우는 한수를 내려다본다. 젖을 물리는 것을 잊어버릴 만큼 신기한 생명이다. 우는 한수를 여전히 보며 소향은 미소를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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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 2013/07/03 [14:41] 수정 | 삭제
  • 다음 연재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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