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청년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세상에,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요즘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매일 아침 9시 30분쯤 일어난다.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에는 약 한 시간 반씩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한 시간씩 자전거를 탄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뒤 역시 한 시간 정도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프랑스어 학원에서 두 시간을 공부하며, 이후 다시 한 시간 정도 복습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는 걸로 하루 일과를 마감한다.
화요일과 목요일 아침에는 다이어트 한의원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카복시테라피(Carboxytherapy. 의료용 이산화탄소를 주입해 여러 질환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최근 부분비만 치료에 사용됨)와 비만치료 침 시술을 받고 온다. 매주 화요일 저녁에는 페미니즘 세미나를 듣고 있으며, 비정기적으로 인권단체에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다.
고정적인 수입도 없는 사람이 누리는 것 치고는 대단한 호사다. 하지만 즐겁지만은 않다. 대학원에 있을 때 내 열정적인 삶은 젠더나 인종 기득권 세력이 인권담론을 독점하는 것에 대항하는 정치적이고 학문적인 투쟁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내 주된 투쟁 상대는 졸업논문을 쓰는 동안 쪄버린 살 11kg이다. 이렇게 시시할 수가!
작년 12월, 부모님은 내 졸업식에도 참석할 겸, 나를 가이드 삼아 영국 여행도 할 겸 글래스고로 날아왔다. 공항에 마중 나가 엄마와 마주치는 순간 엄마가 내뱉은 첫마디는 이랬다. “세상에, 왜 이렇게 살이 쪘어!”
내가 느낀 것은 문화충격에 가까웠다. 그 순간 마치 줄곧 피하려고 애써 왔던 한국이라는 현실이 해일처럼 덮쳐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 직관은 정확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한국 사회가 지난 3개월간 나한테 던져온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세상에, 왜 이렇게 살이 쪘어!”
살 찐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
올해 2월, 가족의 결혼식에 맞추어 귀국했다. 오자마자 가장 처음 한 일은 결혼식에 입고 갈 만한 옷을 사기 위해 백화점으로 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스트레스 받는 쇼핑이었다. 오버사이즈 코트를 제외하고는 몸에 맞는 옷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점원과 엄마는 머리를 맞대고 뚱뚱한 다리를 최대한 가릴 수 있는 스타일은 어떤 것일지 고민했다. 그 상황이 멋쩍고 어색했다. 내가 뚱뚱한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게 감추어야 할 일인가? 아무도 그런 의문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다.
나는 마치 여기저기 빚을 지고 도망쳤던 채무자처럼 백화점 다음엔 한의원, 한의원 다음엔 체육관을 거치며 순서대로 혼이 났다. 엄마 손에 이끌려 가게 된 다이어트 한의원에서 인바디 검사를 하고 상담실에 앉았다. 부위별 체지방과 체지방량 등을 지적하며 한의사 선생님은 거듭 말했다. “문제가 심각해요. 살을 꼭 빼야 해요.” 살을 빼기 위해 의학의 도움까지 받겠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꼭 필요한 말일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운동은 영국에 가기 전까지 같이 운동하던 퍼스널 트레이너 선생님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재개하기로 했다. 내 옛날 모습을 알던 사람이라 그런지,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내 모습을 본 첫 반응부터 무척 짓궂었다. 여기서 한 가지 말해두자면 나는 영국에서 2년 반의 시간을 보낸 이후, 외모에 대한 짓궂은 농담을 거의 예외 없이 ‘무례함’으로 인식하며, 결코 장난으로 받아넘기지 않게 되었다. 내가 살짝 정색하고 지적한 것이 의외였는지, 선생님은 며칠 뒤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말을 했다.
“그런데 회원님은 살이 찐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요.”
내가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원체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 크고 단단한 몸을 지향하는 내가, 비록 단기간의 좋지 못한 습관으로 몸이 많이 불었다 한들 살을 빼고 근육질의 몸을 되찾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논문을 막 끝냈을 당시 내 건강상태는 무척 위태로워서, 하루 16시간 이상 앉은 채로 시간을 보낸 탓에 허벅지 피부는 검게 변색했으며 팔다리 근육에 통증이 굉장해서 바로 앉지도 못할 정도였다. 운동을 시작하고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건 어느 정도는 생존본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보다 덜 필사적인 이유도 물론 있었다. 예전에 입고 다녔던 좋아하는 옷들을 더 이상 입을 수 없었고, 불어난 몸에 맞춰 새 옷을 사니 옷맵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구들과 사진을 찍으면 매번 기억과 다른 내 몸이 어색해서 깜짝 놀라게 되는 것도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말해두어야 할 것이 있다. 지금보다 살을 빼고 싶다는 것과 지금의 내 모습이 싫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라는 것이다. 고백하자면 나 역시 오랫동안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운 좋게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볼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예쁜 여자후배’ 역할로 소모되는 여학생들
내가 대학원을 다녔던 영국 글래스고는 추운 도시이다. 한여름의 기온도 20도를 크게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상과 영하를 오락가락하는데 매일같이 비바람이 친다. 짧은 여름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 년 내내 모자가 달린 점퍼에 어두운 상.하의를 입는다. 옷차림으로는 성별을 알아보기 힘들다. 데이트를 할 때 단단히 껴입고 나갔다고 ‘여자로서의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도 않는다.
한국의 겨울 역시 여느 나라 못지않게 춥지만, 번화가의 길거리에는 미니스커트에 얇은 살색 스타킹을 입은 여자들로 가득하다. 한 번은 한국에서 길거리 패션을 촬영한 사진을 보여주며 현지인들에게 이 사실을 설명해주니 “나라면 도저히 못 견딜 텐데, 추운 나라에서 살아서 추위를 느끼지 않나 봐? 한국 사람들은 좋겠다!”하고 감탄하는 것이었다. 물론 날씨가 어떻든 사람들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도 미니스커트를 입게 만드는 강박적인 사회분위기가 그들에게는 상상하기 힘든 어떤 것이었나 보다.
다행히 나는 학업에 썩 잘 적응했다. 아침에 방을 나서면 도서관 폐관 시간에나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번거로운 화장도 하지 않았다. 핸드백을 놓고 책과 논문으로 가득 채운 등산 가방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학생은 백팩을 맸다. 그러지 않고는 들고 다녀야 하는 책과 인쇄물의 무게를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누구에게서도 “너도 꾸미면 예쁠 텐데” 같은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대학원 공부와 동기들과의 교류는 나에게 느리지만 확실한 각성의 계기를 주었다. 인권과 국제정치를 공부하기로 한 것은 이런 점에서도 현명한 선택이었다.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비주류-여성과 비(非)백인, 성소수자 그리고 난민 출신의 인권운동가-로 이루어진 내 동료들은, 마치 내가 성차별과 젠더 역할의 벽에 저항하고자 했던 것처럼 제각기 결코 질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지치지 않고 이상을 추구하며 열정적이고 늘 행동하는 사람들을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다. 만났다 하면 밤을 새가며 토론했고, 함께 인권동아리를 창설했으며, 세미나를 주최했다. 그들은 나를 신뢰했고 나의 투쟁을 이해했다. 그리고 지정성별 여성에 성소수자로서 내면화된 억압으로 인해 나 자신조차 알지 못했던 나를 새롭게 끌어내는 과정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할 자유가 있으면, 인간은 어디까지든 강해질 수 있다.
아, 지금 이 순간도 얼마나 많은 재능 있는 여학생들이 ‘예쁜 여자후배’ 역할로 소모되고 있을까?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활동하던 학회에서 내게 기대되는 역할은 ‘귀여운 막내 여자후배’라는 걸, 나는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으면 칭찬받았고, 카라의 ‘엉덩이 춤’을 춰 보라는 주문을 하는 선배도 있었다. 유일한 여자 회원이라고 나한테만 잡일이 면제되는 일도 있었다. 반대로 군대 가는 남자 후배의 ‘총각딱지를 떼 주러’ 가자는 제안에 불쾌감을 표했다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고 혼났던 적도 있었다.
나는 바보가 아니었고, 이 모든 일이 부당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학업과 관련 없는, 차별적인 성 역할을 강요받지 않는 학교생활이나 그런 곳에서 마음껏 가능성을 펼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던 것 같다.
어째서 여성에게 ‘미용’이 선결과제가 된 걸까
주로 글 쓰는 일을 하는 나는 밤 시간에 집중이 잘 되는 편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일찍 자야 살이 잘 빠진다며 몇 번씩이나 수면패턴을 바꿀 것을 다짐받았다. 가벼운 점심과 푸짐한 저녁을 먹는 식단을 보여줬더니, 점심에 많이 먹고 저녁에 적게 먹어야 살이 빠진다는 말을 했다. 공복에 더 집중이 잘 되기 때문에 프랑스어 학원에 가기 전에 가볍게 먹는 습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더니, 강한 말투로 “그래도 바꾸셔야 해요” 라고 말했다.
살을 빼기 위해 어떤 식습관이나 수면습관이 더 효율적이라는 조언 정도야 이로울 것이다. 그러나 모든 라이프스타일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살을 뺀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에도 선행할 만큼 중요한 일인가? 그리고 여자들은 공부도 안하고 살만 빼는 게 일이란 말인가?
재미있는 것은 어디서든 이런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트레이너 선생님은 “다이어트가 최우선인 필사적인 사람들만이 살을 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살을 빼는 것이 최우선인 삶이라니, 공허하게 들린다. 물론 무엇에 가치를 두느냐는 개인의 자유이다. 그러나 어째서 다수의 여성이 미용을 선결과제로 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살을 빼려고 마음먹었고 그러기 위해서 식단을 조절하고 있지만, 머리를 쥐어짜내야 하는 글을 쓰면서 엄격한 식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만약 살을 빼기 위한 식이조절이 글을 쓰는 작업을 방해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우선할 것이다. 그러므로 “살이 찐 모습이 전혀 부끄럽지 않은 것 같아요”라던 트레이너 선생님의 말은 전적으로 사실이다. 다시 돌아간대도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논문에 집중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그곳의 친구들이 그립다. 이곳에서는 나의 어떤 성과보다도 11kg 감량이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들뿐이다. 그들은 어떤 응원의 말을 해줄까?
나는 아름답기보다 충실하기를 원한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된다느니 하는 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대중매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나 SNS상에서는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자존감마저 높아졌다는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 주변인들에게 감량을 권한다. 나는 되묻고 싶다. 살을 빼야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문제가 아닌가?
모 비만 클리닉의 광고에는 뚱뚱함을 상징하는 ‘지방이’라는 귀여운 캐릭터가 등장해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뚱뚱한 여성이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의 광고임에도 날씬한 몸매의 여자배우를 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이 발상은 기발하다. 그리고 매우 상징적인 광고이기도 하다. 광고 속의 세상에서는 의학적으로 비만인 여성은 있어도, 큰 몸집을 가진 여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자가 뚱뚱한 것은 자기 관리를 안 하기 때문이다”라든가 “못생긴 여자는 없다. 꾸미지 않는 여자가 있을 뿐”이라는 말이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있지 않나 싶다. 여성이란 본래 아름답고 날씬한 존재이며, 날씬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그의 일부가 아닌 (떨어져 나가야 할) 이질적인 무엇이라는 생각이다. 어쩌면 한국사회의 더욱 큰 문제는 뚱뚱한 사람 자체에 대한 불호라기보다는, 뚱뚱함을 결코 어떤 이의 속성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내가 살을 빼기로 하자, 사람들은 내가 잉여의 몸무게를 적으로 삼아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이 11kg은 나에게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변함없이 나의 일부이며, 나의 신체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을 충실하게 소화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건강한 식습관과 꾸준한 운동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선택했으며, 이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내 몸은 마찬가지로 충실한 결과물을 돌려줄 뿐이다.
몸의 존재방식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아름답기보다 충실하기를 원한다. 왜 아니겠는가? 아름다움의 기준은 내 의지와는 별개로 만들어지며, 이를 충족시키는 일이 항상 쉽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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