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이가현님은 불꽃페미액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주
머리스타일에 따라 달라지는 행동거지
지난 번 삭발을 한 후로 머리가 제법 자랐다. 이제는 샴푸를 반 정도 짜서 머리를 감는다. 잠을 잘못 자면 머리가 뻗쳐서 다소 귀여운 모습이 되기도 한다. 같이 삭발을 했던 한 친구는 머리가 좀 자라자 옆머리를 다시 시원하게 밀었다. 눈썹도 같이 정리해서 한결 강렬한 인상이 되었다.
요새 알바를 하러 갈 때마다 먼저 출근한 직원으로부터 듣는 인사말은 “머리가 많이 자랐네요”다. 만나는 사람마다 내 머리카락의 성장 과정에 대해 나에게 친히 알려준다. 나는 이제 ‘머리가 많이 길었죠?’ 라고 먼저 묻기도 하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모자를 쓰고 나가야 할지 말아야할 지를 고민하고 있다. 오히려 대머리였을 때는 덜 한 고민이었다. 머리카락이 자랄수록 머리통이 더 커 보인다는 생각도 들고, 머리가 조금 자란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삭발일 때보다 오히려 더 ‘남성’같이(?) 행동하게 되었다. 이 느낌을 남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중성적이라고 해야 할지 어떻게 표현해야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걸음걸이는 좀 더 건들거리며 걷고, 표정은 더 무표정에 가까워졌다. 삭발한 머리보다 조금 자란 짧은 머리가 더 남성성과 가깝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아니면 삭발하고 제법 시간이 지났기 때문일까? 나 스스로 머리가 길었을 때와는 다른 젠더로 행동하는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삭발을 하기 전에도 나는 머리스타일에 따라 옷차림과 행동과 말투를 조금씩 바꾸곤 했다. 긴 생머리에 앞머리를 내렸을 때에는 여성스럽고 청순하게, 앞머리가 없는 긴 머리를 했을 땐 좀 더 시크하게, 단발머리는 발랄하면서 똑 부러지게. 사람들이 내 외모를 보고 기대하는 바를 그대로 재현하려고 했던 것 같다. 어떤 친구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그게 네가 잘하는 거지’ 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저씨’, ‘쩍벌남’ 오해에 ‘출소했어요?’까지
한 번은 담배를 피우러 나간 룸메이트를 따라 나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저 멀리서 담배를 피던 룸메이트는 이내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당연히 나를 보고 오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앞을 지나쳐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기분이 안 좋은가보다 생각했다.
내가 집으로 들어갔더니 방에 있던 그 룸메이트가 갑자기 놀라면서 “언니, 화장실에 있는 거 아니었어?”라고 반문했다. “응? 아니, 나 밖에 있었잖아!” “에? 언니 화장실에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룸메이트는 멀리서 나를 보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가, 오히려 가까이서 내 모습을 보고는 ‘옆집 아저씨가 팬티만 입고 나와 있네’라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쳤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 빨간색 반팔 티셔츠와 여름용 체크반바지 잠옷을 입고 서 있었다. 나는 정말 놀라버렸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 가까이서 봤을 때 오히려 남성같이 보였다니, 그냥 남자도 아니고 남성성의 대표 격인 ‘아저씨’같아 보였다니!
이 사건도 한동안 나에게 충격이 되었다. 멀리서 볼 때는 남자 같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가까이서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이미 삭발 초기 때 지하철 화장실에서 마주친 것과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반응이기에 더욱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에서는 억울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좌석에 앉을 때부터 왼쪽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분이 나와 몸이 닿기 싫다는 듯이 몸을 움츠리고 피하는 것이 느껴졌다. 불편하신가보다 생각했지만 가다가 어느새 꾸벅꾸벅 졸게 되었다. 어쩌다보니 왼쪽 여성분께 몸이 기울게 되었는데, 그 분이 나의 몸을 확 밀쳐내는 바람에 졸음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그때 밀려오는 불쾌감과 억울한 감정은 내가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후 지하철에서 마주치고 몸이 닿았던 수많은 남성들을 떠오르게 했다. 나는 쩍벌남들 사이에 앉아서 똑같이 쩍벌을 해서 그들의 다리를 오므리게 만들었고, 간혹 술에 취해 나에게 기대는 남성들을 세게 밀쳐내기도 했다. 남성은 어느 공간이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싫었고, 그런 남성들의 자신감이 여성들의 공간을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의도가 없는데 오해받은 것이 억울했지만, 그 여성분의 행동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어느 샌가 나도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해하면서 나의 공간을 자유롭게 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짧은 머리에 내 태도를 맞추면서 그런 행동까지 몸에 배었던 것일까? 내가 몸에 닿기만 해도 불쾌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그 느낌은 오랫동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이번 달에는 친구와 여행을 가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함께 타시는 강사 분께서 농담으로 “언제 출소했어요?” 라고 물었다. 나는 웃음이 빵 터져서 한참을 웃고 나서 “여러 번 했죠” 라고 답했다.(진짜다) 강사 분은 이후 짧은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말해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외모 평가라고 기분이 상했을 테지만, 높은 하늘을 기분 좋게 날고 있으니 마음이 넓어져 감사하다는 말로 넘어갔다. 짧은 머리가 감옥에서 출소한 여자 같아 보인다는 건 또 새삼스러웠다.
추석연휴 단기 알바 구직을 포기한 이유
더 놀랍고 기분 상하는 일은 새로운 알바를 구하면서도 벌어졌다. 9월 한 달을 돈이 없어 시달리다가, 추석 때 단기 알바로 가난을 조금이나마 면해봐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알바몬 사이트에서 호텔 연회장 서빙 알바에 지원했다. 이전에도 해봤던 알바이기 때문에 경력도 있었고 팔 힘도 자신 있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연회장 알바를 할 때 여성은 무조건 구두와 머리망을 착용하도록 되어있는데, 나처럼 머리가 짧은 여성도 지원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였다.
알바를 구하기 위해 문자로 지원을 하며 짧은 머리도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담당자가 가능하다며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한껏 친절하게 미소 짓는 얼굴 사진을 찍어서 보냈다. 하지만 돌아온 답장은 “죄송하지만 지원불가하세요” 였다. 담당자는 서빙이 아니라 주방 보조는 지원할 수 있다고 했지만, 난 이미 기분이 상해서 다른 업무에 지원할 마음이 나지 않았다.
아마 다른 서빙 알바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른 곳에서 기물청소를 하는 업무에 지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담당자가 ‘기물청소는 남성들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안 된다고 거절했다. 여성이면 서빙을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도 덧붙였다. 내가 머리가 짧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물으며 ‘내 머리는 거의 스포츠 머리’라고 설명하자, 담당자는 “그럼 현재 가능한 곳은 없네요” 라고 답변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자 옷을 입으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들었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니라는 이 애매한 나의 성별은 그저 겉모습으로만 판단되는 것이었다. 심지어 두 번째 지원한 곳은 사진도 보지 않고 나의 업무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리 서빙은 단지 음식과 식기를 나르는 일이 아니었다. 여성이라면 서빙에서는 응당 여성성을 드러내며, 긴 머리와 머리망으로 손님들을 놀라지 않게 할 의무라도 있는 것 같다. 결국 길고 긴 추석 연휴 기간에 많고 많은 추석 단기 알바 중에서, 나의 시간과 머리 길이가 모두 맞는 알바를 찾기는 어려웠다. 나는 추석 연휴 동안 푹 쉬며 드라마나 보게 되었다.
사실 머리를 막 밀었을 때보다 머리가 어느 정도 자란 지금, 좀 더 새롭고 놀랍고 한편으로는 불쾌한 경험들을 하고 있다. 남성성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머리와 어울리는 태도와 행동을 취해야 할 것 같고, 내 몸을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모자로 머리를 가리고 싶지 않지만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너무나 촌스러워 보이기에 나의 고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머리카락은 단순히 외모를 넘어서는 무언가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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