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난민? 당신의 머릿속 ‘난민’ 이미지는 무엇인가요?여성난민 소식 전하는 하리타-난민인권 활동가 고은지 대담②<우리 자신의 언어로 – 독일 여성 난민들의 말하기> 연재를 통해 여성난민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독일 및 유럽의 난민 이슈를 조명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제주 예멘 난민’ 사태와 관련해 난민인권센터 고은지 활동가와 나눈 이야기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난민신청자 취업 허가는 ‘생계 지원 없다’는 뜻
하리타: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서 예멘 난민들 대상으로 채용박람회를 연 것에 대해서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다. 통상 6개월 규정을 깨고 파격적인 예외를 두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좀 놀랐다. 많은 나라들이 이주민과 난민에게 노동 허가를 내주는데 있어서 보수적이다. 일자리는 자국 경제와 고용에 대단히 민감한 문제. ‘외국인들이 들어와서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불평이 쉽게 나오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더 신중한 것 같다.
고은지: ‘가짜 난민’론의 중요 논거가 이들이 ‘취업하러 왔다’는 것인데, 사실 우리나라가 난민 신청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도 체류 6개월 이후에 취업을 허가해 주는 것은 ‘생계 지원을 따로 안하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생계 지원과 노동 허가가 반비례한다. 우리나라 정책이 6개월을 기점으로 하는 것은 난민 심사를 6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는 난민법 18조와, 생계 지원을 할 수도 있다는 조항(40조) 때문인데, 사실상 생계비를 지원받았던 난민신청자는 4%가 채 되지 않는다. 받는다 해도 1인당 약 43만원으로 생존에 부족한 금액이다. 대부분의 신청자들이 받지도 못하는 생계 지원을 근거로 노동할 기회도 막혀있는 상태다.
이번 제주 노동 허가의 경우 이례적인데, 사실 문제가 많다. 생계비 지원은 예산이 없으니 하지 못하지만, 노숙하는 난민들이 대거 늘어나 사회 문제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일종의 통제 수단으로 취업 제도를 급히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생계비 지원이나 취업 허가 둘 중 하나는 보장하라는 것이 난민인권센터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그동안 둘 다 전혀 안 하다가 제주의 예멘 난민에 한해서만 갑자기 하는 것은 다른 난민들에게는 황당한 처사다. 지금 이 시간에도 다른 지역의 난민신청자들은 애타게 지원이나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난민 인정을 받아도 노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등 열악한 상황인데 이들의 존재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제주도 특별 노동 허가의 문제점은 또 있다. 한시적으로 채용박람회를 열어 양식업, 요식업장에 사람들을 연계하긴 했지만, 최소한의 노동자 보호와 교육도 없었기 때문에 난민들은 사업주에 의한 인권 침해나 상해 등 폭력에 노출된다. 최근에 와서야 4대보험 등에 대해서도 출입국이 개입하겠다고 했다.
독일 ‘생존권 보장형 통제’ 한국 ‘각자 알아서 생존하라’
하리타: 아무리 기존 난민 지원 제도나 정책 노선이 미흡하더라도 그 연장선에서 개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별도 조치를 취한 것은 혼란만 가중시킨 것 같다. 예멘 난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는 것을 부채질한 꼴이 아닌가. 노동 허가와 같은 중대한 정책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입법대행자 간의 대화도 제대로 없었다는 것이 아주 걱정스럽다. 제도는 시간을 들여 제대로 정비해서 시행하고, 우선 국고를 열어 생계 지원을 일괄적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독일의 경우, 생계 지원은 일관되게 하고 있다. 현금, 숙소, 생필품, 식량을 지원한다. 많은 난민들이 정부에서 일부 또는 전액 지원하는 언어-문화 강좌인 ‘통합 코스’(intergration kurs)를 듣고, 미성년의 경우 학교에 다닌다. 취업 허가 제도는 다양한 경우를 고려해 세분화되어 있다.
취업 관련한 정책을 간략히 설면하면 1)난민 신청 단계에는 출신국가와 신청서 제출 여부가 기준이다. 안전한 국가(Safe Countries of Origin)로 분류된 나라 이외에서 온 사람에 한해 망명신청서 제출 3개월 이후부터 노동 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허가가 나오더라도 처음에는 허가 내용이 제한적이다가, 15개월이 지나면 확대된다. 2)두 번째 기준은 난민 심사 완결 및 체류권(비자) 여부다. 심사가 네 가지(망명권, 난민 보호, 보충적 보호, 송환 금지) 중에서 결론 나고 1~3년의 장기 체류권이 나올 때 노동 허가 역시 차등적으로 보장된다. 체류권 발급 대상이 아니지만 아직 독일에 남아있는 사람의 지위는 6개월마다 갱신이 필요한 관용(Duldung) 상태다. 이 경우 별도로 신청하면 노동 허가가 나올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직업 생활이 어렵다.
이렇듯 복잡한 제도와 규정에는 저마다 법률적, 행정적 근거가 있지만 난민들은 드높은 정보의 벽과 서류, 언어의 벽을 호소한다. 스스로 어떤 케이스에 속하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그에 따른 권리를 제때 요구할 수 있는데, 못하는 이들이 많다. 출신국가에 따라 1차 심사에 7개월~18개월, 재심 청구 과정까지 고려하면 2~3년간 경력과 노동 기회가 단절된다는 것이 실제로 많은 난민신청자들의 불만 사항이다.
사실 독일 난민 정책의 큰 키워드 중 하나 역시 ‘통제’라는 생각이 든다. 난민들이 입국하는 모든 육로와 해상 국경에서부터 ‘도착센터’를 통해 격리 수용이 시작된다. 이후에 지역으로 와서도 배정받은 난민숙소에서만 생활해야 한다. 그 동네에서만 자율 보행이 가능하다. 타 도시로 여행을 가려면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숙소에는 경비요원이 항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일반 시민과의 접촉을 줄이고 그에 따른 마찰이나 공격의 가능성은 줄이지만, 난민의 입장에서 보면 수년간 계속되는 큰 제약이다. 통제 정책의 핵심인 숙소 관련해서도 난민숙소의 질과 사생활 보호 등 문제되는 부분이 많다. 아까 한국 난민들 가운데 노숙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는데, 독일에서는 노숙이 불가능한 상황인 것이다.
*독일의 난민숙소 제도에 관해서는 하리타의 다음 기사를 참조: 사우디에선 ‘노예’, 독일에선 ‘갇힌 신세’ http://ildaro.com/8222
고은지: 공항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각개 서바이벌’이 시작되어 난민 신청도, 생존도 알아서 해야 되는 한국과는 차이가 크다. 한국의 경우 영종도에 있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가 일종의 난민숙소 기능을 하지만 정원이 연간 164명밖에 되지 않고, 모든 신청자가 거기서 지내야할 의무는 없다. 법무부도 이 시설을 따로 홍보하지 않는다. 실제로 작년에 시설 이용 신청은 104건밖에 되지 않았다. 작년 한 해 난민신청자 9천942명 중 1%만이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의 존재를 알고 입주 신청을 한 셈이다. 이 센터는 대중교통의 접근이 어렵고 인근에 하수처리장과 경찰청 헬기착륙장이 있다. 이 시설 외에 난민 정착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 프로그램은 없다.
‘가짜 난민’? 난민의 요건이 뭔지 알고 얘기하나
하리타: 앞서 나온 ‘가짜 난민’ 논란에 대해 얘기해보자. 난민 반대자 중 상당수가 ‘진정한 난민’과 ‘가짜 난민’이 따로 있으며, 가짜는 얼른 판명해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을 합리적인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어떤가?
고은지: 가짜 난민 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대부분 남성이라서 2)집단으로 들어왔으며 페이스북 그룹 등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3)일자리를 구하려 하기 때문에 4)브로커를 통해 난민 신청을 했기 때문에 5)난민 인정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아서.
낮은 난민 인정률은 국내 난민 심사 제도 운영에 문제가 있어서 초래된 결과이지, 신청자가 ‘가짜’라서 그렇다고 보기 어렵다. 대법원 최종 불허 결정을 받은 사람 중에서도 재신청 과정을 통해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가 있고, 난센에 방문하는 난민 중 요건을 달성함에도 인정 못 받은 억울한 케이스가 많다. 보충적 보호, 강제송환 금지 케이스를 포함한 EU 평균 인정률이 평균 60%인데 우리는 11%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 ‘가짜 난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난민협약 등 국제적 기준에 명시된 난민 요건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 기준에 따르는 심사 과정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리타: 그리고 난민신청자 중에 남성이 많은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많은 나라들에서 여전히 가부장적인 관습으로 인해 남성에게 이주의 기회가 훨씬 많이 주어진다. 가족 중 한 명에게만 돈을 몰아 피난을 보낸다면 보통 ‘젊은 남성 가족구성원’을 보낸다. 여성들은 육아와 가정을 돌보는 전통적 역할에 매어있는 경우가 많다. 내전과 같은 재난 상황에서 남성이 군병력으로서 폭력에 먼저 노출되기 때문에 피난을 떠나기도 한다. 전쟁과 같은 집단적 재난 시에 여성들은 가족을 돌보느라 홀로 떠나지 못하고 자국 내 난민이 되어 도망치고 숨어 다니고 있다. 집단강간, 폭격, 인신매매, 기아 등 갖가지 위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상태로 말이다. 여성들이 외국으로 피난 갈 때는 남편이나 부모, 자식과 함께 오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가족이 아닌 개인 단위로 난민이 되는 여성들은 가정폭력, 강제조혼, 여성성기훼손(FGM) 풍습 등 성별을 근거로 한 가족-공동체의 박해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젠더박해’ 사유로 인한 난민은 인정받기 더 어렵고, 그만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남성 난민의 진위를 의심하기보다는 이들과 혈연, 지연으로 연결된 여성들이 이들의 피난에나마 걸어야 했던 간절한 희망을 상상해봤으면 좋겠다. 떠나온 남성들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고은지: 브로커를 통해 집단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가짜라는 주장 역시 맞지 않다. 세계 어디에서나 난민들은 자국에서 몰래 빠져나오는 것부터 다른 나라에 입국하기까지, 피난 과정에서 브로커에게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 난민 신청 과정에서 브로커의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이는 정부의 권리고지 공백으로 인해 개별 신청자가 절차 접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선택이다. 브로커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출입국 재량을 이용해 일선에서 돈을 받으며 재량을 남용하는 출입국 공무원에 대한 관리 단속도 필요하다. 이들의 행태도 브로커와 다름없다.
또 실제로 난민신청자 가운데 많은 이들이 난민 인정 요건과 같은 기본적인 내용을 잘 모르는 채 신청한다.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으면 우선 난민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를 허위, 가짜라고 볼 수 있는가? 절박함 마음에 제도에 의존하는 무지의 사례로 봐야 한다. 난센에 온 모든 난민신청자는 우선 상담을 거치는데, 피난 사유가 난민 인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알려준다. 그 과정에서 제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난민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이주민들도 많다. 그만큼 권리고지나 제도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중요하다. 그런데 현재는 법무부가 이런 역할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난민신청자 중에서는 자기 경험을 제대로 언어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복잡한 신청서류와 난민 요건에 부합하게 자기 경험과 이야기를 정리, 재구성해서 써야하는데 이 작업은 쉽지 않다. 언어 능력이 부족하거나 문서화 작업이 익숙하지 않는 등, 사회문화적 배경에 따라 특히 어려워하는 분들의 사유를 들을 때에는 난민 요건 대비 공백이 보이는 부분을 더 물어가며 이야기를 끌어낸다. 이런 작업은 사실 우리 같은 시민단체가 아닌 정부에서 해야 된다. 그러나 정부는 난민신청자가 이미 완벽한 진술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그들의 진술을 듣거나, yes or no의 단답을 강요하는 등 기회를 차단시키는 경우가 많다. 신청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전제로 듣는 것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난민신청자의 삶을 통해 종종 본다. 정부가 ‘남용 난민’을 앞세우고 이들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부의 제도적, 정책적 실패가 만들어낸 그림자를 ‘가짜 난민’ 논란을 통해 본다.
‘가짜 난민을 이야기하는 당신은 누구냐?’라는 반문을 하고 싶다. 사람들이 페이스북 제주도 외국인 그룹에 예멘 난민들이 멤버로 들어온 것을 가짜의 근거로 내세우거나, 과거 아일린 쿠르드 사건까지 다시 꺼내는 것을 보며, 진실 여부를 떠나 그들에게 ‘가짜 난민’이라는 대상이 오히려 필요하구나 싶었다.
하리타: 적극적으로 가짜 뉴스를 유포하며 혐오를 조장하거나 인터넷 상에 혐오 발언을 하지 않더라도, 그런 의견에 솔깃하고 동조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 위기감이 든다. 이런 동조적 혐오자들의 경우는 이번에 ‘실체로서 접한 난민’들이 기존에 ‘자기 머릿속 난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있자 충격을 받아 자극적인 내용에 휩쓸리는 것 같다. 편견과 고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난민하면, 찢어진 누더기를 입고 전쟁의 포화로 인해 부상을 입은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현실에서 대부분의 난민들은 어떻게든 목돈을 마련해 브로커를 고용하고 그들의 인도에 따라 불법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정말로 재난 한가운데 있고 가진 것이 전혀 없는 사람에겐 신변을 정리해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것마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난민이 된, 떠날 수 있었던 자들의 여정이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다는 게 아니다. 브로커가 마련한 교통수단이나 물자가 생존을 위협할 만큼 열악한 경우가 많고, 어떤 경우에는 사기를 당해 인신매매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난민들은 세계 곳곳에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온 이들이다. 다양한 계층과 분야에서 평범한 삶을 살던 이들이 어느 순간 불가항력으로 난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들도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페이스북과 스마트폰을 모르겠나.
‘다문화’ 사회까지는 멀다…이슬람포비아 넘어서기
고은지: ‘무슬림=근본주의=테러리스트’라는 편견을 쉽게 접할 수 있는데, 독일에서는 일반 시민들 사이 무슬림과의 공존에 대해 어떤 논의가 있는지 궁금하다.
하리타: 이슬람포비아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강하다. 독일 시민들이 백인 기독교를 자국의 주류 문화로 보는 믿음은 견고하다. 다만 무슬림 인구가 늘고 있으니까 이슬람 문화를 이해할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어느 정도 생긴 것 같다. ‘이슬람포비아’를 주제로 한 스터디 모임이 열린다거나, 무슬림 여성들을 위한 자전거, 셀프디펜스, 상담 코스가 생기고, 대학에 ‘이주, 난민과 통합’이라는 타이틀의 1년짜리 인증 과정이 생기는 사례들을 본다. 김나지움(중고등학교 과정) 종교 수업이 몇 년 전까지는 의무였고 선택 과목이 개신교/천주교 뿐이었다면, 이제는 수업을 안 들어도 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다른 문화권 학생들의 소외와 불만을 방지하는 것.
우리나라에는 ‘다문화’라는 개념이 있는데, 사실 다수 문화와 소수가 명백한 상황에서 다양한 문화가 있다고 하여 그 문화들이 대등하게 공존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서구에서는 문화적인 융화(assimilation)라고 했다가 통합(intergration)이 지배적인 개념이 되었는데, 누가 누구에게 통합되겠나. 지금 시대에 이주민은 어디서나 소수이고 약자일 것이다. 다만 ‘다수가 소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태도’가 문화로 자리 잡을 수는 있다.
생활 수준, 교육 수준, 동독과 서독, 도시와 시골 지역과 같은 특성에 따라서 이슬람포비아에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을 본다. 독일에서도 라이프치히 같은 구 동독지역에는 아직까지 인종차별의식을 가진 폐쇄적인 토착민이 많다. 이들은 극우 정당의 내셔널리즘을 지지하면서, 이주민들이 자국민 일자리를 빼앗고 독일의 정체성을 흐린다는 피해의식을 노골적인 혐오와 때로는 물리적 공격 행위로까지 표출한다. 구 동독지역의 이주민, 난민 숫자는 다른 지역에 비해 현저히 적다. 일상적으로 길거리 추행을 겪거나 커뮤니티에서 차별을 당하면서 누가 거기서 살고 싶겠나?
한편 이슬람포비아에는 이슬람권의 가부장적인 제도와 문화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그 지역 출신 이주민, 난민들이 성차별과 폭력적인 행위를 하리라는 우려도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외신 보도로 접하는 그림 너머, 이슬람권 실제 사회에서는 굉장히 많은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젠더 이슈가 연일 뜨겁고 새롭게 떠오르듯이, 그 지역에서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 젠더 규범과 질서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실천이 매일 확대되고 있다. 여성뿐 아니다. 아버지, 삼촌, 남동생, 오빠, 남편, 동료인 많은 남성들이 현지 여성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헌법에 적힌 히잡 착용 의무(이란)나 여성할례 전통(이라크) 반대하고 여성의 운전할 권리(사우디아라비아)를 위해 같이 싸웠다.
제주의 ‘젊은 남성 난민’들도 어떤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우리 자신과 마찬가지로 좌충우돌하며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곳’에서 수많은 사회격동을 겪고 온 난민들이 이제 ‘이곳’ 한국 사회의 격랑 속에서 많은 것을 새로 배우고 나눈다는 열린 시선으로 봐야한다. 영국과 같이 이주 역사가 오래된 지역에서 무슬림 근본주의 커뮤니티들이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현지법보다 앞세우며 시민들을 해코지한다는 내용의 뉴스를 봤는데, 일반적인 상황은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이주난민들은 현지 사회 문화를 최대한 받아들이고 잘 정착하고 싶어 한다. 일부 극단적 사례를 보고 지레 편견의 시선을 보낸다면,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고은지: 무슬림포비아는 단순히 공포와 편견, 혐오를 넘어서 무슬림들에 대한 실질적인 차별과 공격으로 이어지기 너무나 쉽다. 차별금지법으로 소수 인종과 젠더 등에 대한 차별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 분야 활동가로서 가장 우선 순위로 느끼는 것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차별, 혐오 중단 운동의 확장이다. 한국 사회에 거주하고 있는 난민뿐만 아니라 국내 소수자의 차별 경험들을 드러내고, 이러한 차별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조치로서 시급하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지만, 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맞서기 위한 중요한 제도적 근거가 된다. 제도 마련과 함께 차별과 혐오에 맞설 수 있는 직접행동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해 활동해나가고 싶다.
하리타: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하며, 묻고 싶은 게 있다. 시간과 예산이 허락한다면 난민인권활동가로서 꼭 실현하고 싶은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고은지: 난민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뛰어놀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싶다. 오랫동안 꿈꿔온 일인데, 일종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개설해 운영하는 것이다. 난민 지위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한국 사회의 여러 제약들에 걸려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을 다른 사람들과 연결하는 일이 시급하다. 내년 정도 본격적으로 작업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커뮤니티 사이트 운영진을 비공식적으로 모으고 있는 단계다. 난민과 난민 사이, 난민과 시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할 수 있는 공간. 작위적으로 연결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있어서 또 다른 이들이 모이고 연결되는 공간. 새로운 언어와 권리들이 집단지성을 통해 다양하게 직조되는 ‘시끄러운’ 공간. 무수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고 때로 결집되어 하나의 힘으로 전화하는 공간. 이러한 공간들이 한국 사회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필요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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