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발과 신발
발과 신발 (상)편에서는 발의 기능을 설명했고, 발이 편한 신발이 아니라 ‘유니화’(유니폼처럼 일할 때 신어야 하는 구두)를 신어야 하는 백화점과 면세점 판매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침해받고 있음을 알렸다.
추우면 장갑을 끼고 유독물질은 맨손으로 만지지 않듯이, 신발도 발을 보호할 목적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패션’이나 ‘예절’을 이유로 발을 망가뜨리는 신발을 장시간 신게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발을 옥죄는 신발은 서서히 발을 변형시킨다. 발의 구조와 기능이 손상되고, 그 영향은 거의 전신에 미친다.
발바닥과 발가락을 포함해 발 전체를 보자. 본래 발바닥의 앞부분과 발가락들이 있는 부분이 발에서 가장 넓다. 그런데 이상하게 현재의 신발들 즉 대부분의 구두, 운동화, 샌들 등은 발가락 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진다.
어떤 신발을 신는 게 좋을까?
첫째, 앞코가 좁은 신발을 피하자.
맨발로 발가락들을 가지런히 펼쳐보자. 발가락들이 부채처럼 활짝 펼쳐진 상태를 만들어 보자. 엄지발가락이 안으로 굽은 무지외반증, 새끼발가락이 안으로 굽은 소건막류가 아니더라도 발가락을 잘 펼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면 손으로 발가락을 움직여 펼쳐보자.
이렇게 발가락들을 다 펼치고 뻗을 수 있는 신발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런 신발 찾기가 너무 어렵다. 그래서 신발 앞코가 다른 신발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넓을수록 더 나은 신발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처럼 발가락도 모든 발가락이 다 중요하지만 그래도 그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적어도 엄지발가락만큼은 잘 펼치고 뻗을 수 있는 신발이 낫다.
둘째, 높은 신발을 피하자.
흔히 쿠션이 없다고 생각되는 복싱화나 레슬링화도 뒤꿈치 높이가 2cm까지 된다. 뒤꿈치 높이(신발 내부에서 측정하는 높이)가 5cm를 넘는 러닝화, 워킹화가 너무 많다. 원래 우리의 발바닥 피부는 걷거나 뛸 때의 마찰을 견디기 위해서 두께가 더 두껍고, 더 단단하게 부착돼 있다. 각각의 발에 세 개씩 있는 아치는 충격을 흡수하고 체중을 분산시킨다. 그런데 5cm나 되는 쿠션은 너무 지나치다.
발은 유리가 아니다. 과보호는 오히려 발의 기능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간단한 물리학의 문제를 낳는다. 발이 지면에서 너무 높이 올라가 있으니 발목이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현재의 운동화들은 발의 아치 모양을 신발에 미리 주조해 놓고 신발 앞부분도 바닥에서 들리게 만들어 놨다. 즉 발이 스스로 해야 할 아치와 스프링 역할을 신발에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러나 인체의 자연스러운 기능과 움직임은 적절히 쓸수록 유지되는 편이다. 인간 발의 아치와 척추의 곡선은 대표적인 인간 진화의 산물이다. 유일한 이족보행 직립동물인 인간에게만 있고 다른 유인원들, 고릴라나 침팬지에게는 없다. 즉 그들은 모두 평발이고 척추도 거의 평평하다.
셋째, 연질이 낫다.
현재 유행하는 캔버스 운동화들은 바닥이 평평하고 아치 지지대도 없는 신발이다. 그러나 앞코가 좁은데 신발 재질이 딱딱해서 잘 변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다. 발이 좁은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발가락이 옥죄는 것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신발 전체가 두껍고 딱딱하고 질긴 재질이거나 앞코 부분에 강한 재질을 덧댄 신발일수록 발의 움직임이 제한되고, 발의 움직임에 따라 신발이 변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발이 신발에 맞게 변하기 쉽다. 그래서 연한 재질의 신발이 더 낫다.
연질의 운동화를 고르면 대부분 안에 밑창이 있다. 살짝 접착된 밑창도 있지만 쉽게 뜯어서 뺄 수 있다. 밑창을 빼면 쿠션을 좀 낮출 수 있고 덜 물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신발 앞코도 좀 넓어진다. (연질의 신발을 신고 많이 걷고 달리면 많이 늘어나고 많이 낮아진다. 빼놓았던 밑창을 그때 다시 넣을 수도 있다.)
요컨대 앞코가 더 넓고, 높이가 더 낮고, 연질의 재질이라 발이 더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신발이 더 나은 선택이다.
맨발의 좋은 점
나는 맨발주의자는 아니다. 완전히 맨발로 사는 것은 너무 극소수만 할 수 있어서 비현실적인 대안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맨발 생활이나 유기농 식단, 정기적 운동 같은 몇몇 특별한 요소들보다 대다수가 누릴 수 있는 건강한 생활 패턴과 환경이 보장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그러면 발이든 몸이든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에 대해서 충분히 회복하고 재생하고 재충전해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맨발의 장점을 살펴보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생활 패턴과 환경이 더 건강에 좋을지 아이디어를 얻고자 함이다.
1. 맨발은 발가락을 더 펼칠 수 있다.
앞코가 좁은 신발을 신으면 멀쩡한 내 발이 사진의 오른쪽처럼 된다. 손가락을 펼칠 수 있듯이 발가락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특히 엄지) 발가락 생김새는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나무를 타는 게 아니라 땅 위에서 서고 걷고 달리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발가락이 원래 방향대로 잘 뻗어 나간 형태를 유지할수록 오랜 세월 잘 서고 잘 걷고 잘 달리기에 좋다.
또한 (변형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상태의 맨발은 발가락끼리 서로 짓누르는 게 아니라 발가락마다 신선한 공기를 접할 여유가 있어서 발의 피부 상태에도 좋다.
2. 발 변형과 낙상의 요인을 줄인다.
발이 보내는 수많은 정보 덕분에 우리는 균형을 잘 유지하고 산다. 맨발은 발의 고유수용성 감각과 촉각을 촉진한다. 그러나 발의 변형은 발가락과 발의 아치는 물론이고 발목, 무릎, 골반의 정렬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균형 감각에도 심각한 손실을 준다. 결국, 발 변형은 낙상 위험을 높인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낙상은 죽음과 관계가 깊다. 낙상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낙상으로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고, 그러므로 건강이 나빠져서 다른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에 이를 확률이 높아진다.
3. 발목 부상의 요소를 줄인다.
높은 구두, 운동화, 슬리퍼는 모두 발목이 접질릴 확률을 높인다. 신발 볼이나 바닥 면이 좁아도 그렇다. 높은 굽과 쿠션, 좁은 바닥 면이 지렛대의 원리대로 발목이 잘 꺾이게 만드는 것이다. 또 높은 굽과 쿠션 때문에 지면과 멀리 떨어진 발은 지면 상태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원래 발과 발목은 유연한 상태로 지면과 몸의 상황에 맞게 미세하게 조정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4. 발과 다리를 더 튼튼하게 한다.
발의 아치는 인간이 서고 걷고 달릴 때 체중의 압력을 잘 분배하기 위해 있다. 그런데, 앞코 좁은 신발을 신은 것처럼 내 발의 앞부분에 테이핑을 해봤더니, 멀쩡한 내 발의 아치가 무너져서 스스로 아치를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발가락, 발, 발목은 각각의 고립된 부분이 아니다. 모두 하나의 단위로 일한다. 이들이 더 잘 일할 수 있을 때 하체 전체가 더 잘 일할 수 있다.
5. 척추의 정렬을 해치는 요인을 줄인다.
굽 높은 신발을 신으면 몸 전체의 무게 중심선이 변형된다. 만약 10cm 정도의 하이힐을 신으면 서 있는 내내 45도 정도 앞으로 기우는 몸을 뒤로 젖히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면 턱, 목, 어깨, 허리, 다리가 긴장 상태에 빠진다. 오래 지속되면 골반과 척추가 틀어질 가능성이 크다. 앞코가 좁은 구두도 비슷한 문제를 낳기 쉽다.
심지어 어떤 신발이든 맨발이든 쉬지 않고 장시간, 장기간 서 있어야 한다면 척추 건강에 해롭다. 구두를 신고 오래 서 있는 백화점과 면세점의 판매 노동자들이 의료기관에서 척추측만증 진단을 받은 비율은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들보다 무려 55.5배나 높았다. (고려대 보건과학대 김승섭 교수 연구팀 2018년 10월 발표)
6. 유연성 향상에 좋다.
하루종일 양손에 손모아장갑을 끼고 그 위에 다시 권투장갑을 끼고 생활한다고 상상해보자. 손가락을 못 쓰는 불편과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심할 것이다. 그런데 발은 체중과 심지어 움직일 때마다 발생하는 그 이상의 무게까지 감당해야 한다. 맨발은 발과 하체가 겪는 많은 스트레스들을 덜어준다. 그러므로 유연성 향상에 도움을 준다. 무술과 요가가 모두 맨발로 수련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7. 신경계 회복에 좋다.
장시간 노동과 학습은 특히 신경계를 녹초가 되게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 이래 노동 강도 문제도 더 심각해졌다. 멀티태스킹(다중작업)이 많아졌고 업무시간의 구분이 모호해진 경우도 많아졌다. 그러면 하루종일 교감신경계가 항진되기 쉽다. 장기적으로는 집중력과 몰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 인체의 대응체계가 손상된다. 부족하거나 불규칙한 수면, 노화까지 더해지면 더욱 그렇다. 스트레스 대응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조절을 위해 피드백을 담당하는 해마의 신경세포가 줄어든다. 흥분상태가 만성적이라서 신경세포의 노화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원래는 긴급할 때 호르몬 농도가 아주 잠깐 최고조에 이르고 이내 안정기로 돌아와야 하는데, 올라가는 것도 더디고 원상태로 돌아오는 것도 오래 걸리게 된다.
면역반응도 탄력성을 잃는다. 비상사태가 장기화되면 만성적인 비상사태고, 그러면 시스템은 대응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인체의 어떤 시스템도 수년, 수십 년 동안 기적을 행할 수 없다. 제대로 된 휴식이 보장돼야 하는 절실한 이유다.
발에는 특히 많은 신경이 분포돼있다. 그래서 발을 신발에서 해방시켜 풀어주고 맨발로 바닥을 딛고 움직이는 활동을 하면 신경계 회복에 적잖이 도움을 줄 수 있다.
편한 신발을 신을 권리
많이 요약하면, 1) 앞이 더 넓고, 높이가 더 낮고, 연한 재질의 신발이 더 좋다. 2) 신발을 벗고 있는 시간, 맨발의 시간을 늘리면 좋다. 3) 실내 운동은 주로 맨발로 하면 더 좋다. 4) (쉬지 않고 한 번에) 오래 앉아 있거나 오래 서 있거나 오래 걷는 것은 좋지 않다. 장기간 계속되면 건강을 해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여러 곳에 가서 신발을 열심히 관찰했다. 다행히 십 년 전과 비교해 많은 사람들이 구두를 신지 않고 운동화를 신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우리에게는 편한 신발을 신을 권리, 제대로 쉴 수 있는 권리, 건강권이 보장돼야 한다. 할 수 있다면 요구하고 싸우고 연대하고 지지해야 하는, 우리 삶과 건강과 생명을 위한 소중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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