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를 일터와 삶터에서 피부로 느끼고 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는 전국의 여성농민들을 만납니다. 여성농민의 시선으로 기후위기 그리고 농업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대안의 씨앗을 뿌리는 새로운 움직임과 공동체적 시도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논밭은 재해예방, 증발산 작용, 탄소흡수, 생태계 보전한다
농업은 식량주권을 지키는 막중한 역할 이외에도 다양한 공익적 역할을 한다. 그중 하나가 기후위기 시대에 점점 잦아지는 홍수나 산사태 등 재해를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이다.
“도시는 다 포장이 돼 있잖아요. 폭우가 쏟아지면 물 흡수를 못 해서 강이 범람하는 거죠. 논이나 과수원은 물 조정 능력을 갖고 있어요. 제가 사는 천안아산역이 폭우가 올 때 침수되기 시작한 시기랑 논밭이 없어진 시기가 맞물려요. 천안 같은 경우도 원래 다 과수원이었고, 논이었을 때는 그런 피해가 없었거든요.”
“농민들이 농지를 가지고 있고 농사를 계속 짓는 것 자체가 재해를 예방하는 일”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논밭은 증발산 작용으로 더위를 누그러뜨리는 대기 조절 기능도 한다. 이 외에도 탄소 흡수 기능, 생물 다양성을 유지해 생태계를 보전하는 기능 등 기후위기 시대에 우리의 환경을 지킬 수 있는 중대한 역할을 한다.
소농(小農)이 먹고사는 데 어려움 없는 나라
유럽연합(EU)에서는 이러한 농업과 농촌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해 농민들의 소득을 보전해 주고 있다.
“EU 회원국에서는 농가들이 농가 소득으로만 먹고사는 게 아니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아서 소득 지원을 받는다고 해요. 어쨌든 기후위기가 닥쳐왔고 ‘이 재난에서 살아남으려면 도시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는 사회적 공감이 있는 거죠.”
EU 회원국들은 정부가 농가 소득을 보전해주기 위해 직접 돈을 지원하기 때문에 농민들이 농촌에서 먹고사는 데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한국에도 직불금 제도가 있긴 하지만, 농업 소득 중 직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0%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유럽의 농민들은 농업 소득 중 50~80%에 달하는 돈을 직불금으로 받고 있다.(박경철,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제도: 배경‧현실‧대안’)
유럽의 농민들은 한국과 같은 (농지) ‘면적’ 기준의 직불금도 받지만, 친환경 농업, 경관 농업, 생물종 다양성 농업 등 다양한 항목의 직불금을 받는다. 최근에는 환경 보전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농업의 공익적 기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직불제를 개편하기도 했다.
한국도 최근 몇 년 새 지자체에서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인정하여 농민들에게 농민수당을 지급하고 있지만, 연간 60~80만 원 수준이다. “아직은 격려금 수준”이라고 후주 씨는 말한다. 실제로 소득을 보전하기엔 한계가 크다는 것. 농촌과 농민을 살리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살리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 사회가 농민수당 등에 더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공감대를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시대, 도시만으론 생존할 수 없다
후주 씨는 요새 토론회나 좌담회 등 어딜 가서든 “농업 교육, 먹거리 교육을 공교육에 필수 과정으로 넣어달라”라고 얘기하고 있다.
“저 어렸을 때도 생각해보면 농업이 교과서에 나온 건 근현대사 시간에 새마을 운동 배울 때뿐이었던 것 같아요. ‘쌀이 쌀나무에서 나오나?’ 이러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어요. 농업에 대해서 모를 수밖에 없죠. 그런데 지금은 어린이들이 아니라 부모 세대가 농사를 모르잖아요.”
후주 씨는 기회가 닿는 대로 뉴질랜드, 호주, 독일 등 선진국에 가는 해외연수에 참가한다. 농업 선진국을 가보면 5살 어린이들도 교육농장에 와서 콩을 만지고 양한테 젖을 주고 퇴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체험한다고 전한다.
“(농업 선진국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5일은 무조건 팜스테이(FarmStay)를 해야 된다’는 식의 규정이 있어요. 한국은 농가 체험 학습 같은 거 하면 주렁주렁 열매 열려 있는 거 따기만 하는 정도인데, 사실 그건 다른 형태의 소비일 뿐이잖아요. 진짜로 어떤 노동과 과정을 통해서 작물이 생산되는지, 수확은 어떻게 되는지 서툴더라도 장갑도 껴보고 흙도 파보고 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이런 교육이 농부를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농업을 잘 이해하고 바른 선택을 하는 소비자를 양성하는 게 목적”이라는 것.
“어린이들이 (농사 과정을) 실제로 보면서 자기가 먹는 게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되면, 자라서 신중하게 선택하게 된다는 거죠. 농업 관련한 정책에도 좋은 지지자가 양성되는 거죠.”
이렇게 농민과 농업의 가치를 깨닫게 만드는 시민교육이 중요하다고 후주 씨는 힘주어 말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마치 알찬 교육을 들은 것처럼 농업과 농민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도시의 시민들이 이렇게 단 몇 시간이라도 직접 농민을 만나볼 기회가 있다면 어떨까. 학교에서 농업과 먹거리 교육을 할 때, 그리고 각종 시민교육에 농민을 강사로 초빙해서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떨까.
기후위기 시대, 도시만으로 생존할 수 없음에 공감한다면 농촌과 도시의 연결을 회복하기 위해 뭐라도 시도해야 할 때다.
[참고자료] -박경철, ‘농민수당‧농민기본소득제도: 배경‧현실‧대안’, [농업 농촌의 길 2020] 심포지엄 분과 5: 농민수당과 농민기본소득 제도 도입할 것인가? -이수미, ‘농업‧농촌의 공익 기능과 농민수당’, 농업‧농민 정책연구소 녀름 제318호 이슈보고서 (2020년 1월)
[필자 소개] 나랑(김지현) 독립 인터뷰어. 글쓰기 안내자. 목소리가 되지 못한 목소리를 기록한다. 그런 목소리들이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게 안내한다. 지금은 제주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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